그분은 살에서 구슬 몇 알 남기신 채
한 오리 연기로 산에 오르시고
풀고 가신 대님은 흘러내려
가을에 닿았다.
젊던 여름의 물도
머리 허옇게 세어
조용히 생각에 잠겨 흐르노니
오랜만에 물로 돌아온 내 사랑이어
내가 너를 찾기까지 너 나를 찾아
얼마나 세상을 굽이굽이 돌았던고
이승의 물소리는 부풀어
내 발목을 잡고 놓지 않으나
너를 묶어 둘 수 없어 또 이별하노니
잘 가거라.
잘 가거라.
내 생애를 짜서
내 그리움을 짜서
영혼의 기름 한 방울로
빗물 되어 빗물 되어
(이하 생략)
`현대문학’ (1957-62)추천으로 등단. 세종대 교수 역임. 한 사람의 생애란 가을 산허리에 피어오른 연기 같은 것일까. 계곡에 흐르는 물도 이승의 인연이긴 하나 이 인연 역시 필연적 이별로 다가서는 무상을 어찌하랴. 그러나 우리의 끈질긴 인연은 다시 물이 되어 만나는 이 이별과 만남이 곧 우리들의 생애일진저.
이일기(시인`문학예술’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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