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추석명절을 앞두고
<대구논단>추석명절을 앞두고
  • 승인 2009.09.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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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규 (대구보건대 안경광학과 교수)

우리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며칠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추석(秋夕)은 한가위, 중추, 중추절, 가배로도 불리는 우리나라 4대명절의 하나로서 설날 다음으로 한국인에게 전통적으로 깊은 뜻을 지니고 있는 우리민족 고유의 명절이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추석을 맞으면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며 모처럼 함께하는 가족들과 송편을 먹으며 이런저런 정담을 나눈다. 추석에는 고향과 친지들을 방문하는 전통이 있어서 전 국민의 75%정도가 이동하다보니 추석명절 기간 동안 열차표가 매진되는가하면 전국의 고속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할 만큼 정체되기 때문에 `민족대이동’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매년 추석을 맞을 때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아버지를 따라 벌초하러 갔다가 벌에 쏘여 퉁퉁 부어오른 자리에 된장을 발랐던 일과 설명절과 함께 일 년에 두 번 있는 연중행사로 대중목욕탕에 갔던 기억들. 평소 아껴 두었던 옷을 깨끗이 차려 입고 친척들 집을 돌며 인사를 다니던 일과 거리에 흔히 볼 수 있었던 한복 차림의 사람들. 해질 녘이면 동네 친구들과 `폭음탄’을 사서 지나가던 사람들을 깜짝 놀래주고는 짧은 다리로 부리나케 도망 다녔던 기억들이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넉넉하고 풍성한 한가위라는 말처럼 추석을 한번 지내고 나면 굶주렸던 빨간 돼지 저금통이 동전들로 채워져 제법 묵직해 지곤 했었다. 물론 세월이 흘러 요즈음은 십 원짜리, 백 원짜리 동전이 기본 만 원권으로 변해 버렸지만….

기쁘고 즐겁기만 했던 추석 명절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슬픔과 걱정거리로 대체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노총각 시절 땐 가족들과 친지들의 장가가라는 닦달 때문에 추석 때 고향에 가기가 부담이 되었고,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전해지는 친구들의 불행한 소식들과 지인들의 사망소식들은 모처럼의 명절을 씁쓸하게 만든다.

예로부터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지만 어른들을 모시고 있는 자식으로서, 며느리로서 살아가고 있는 나와 아내에겐 이런 저런 걱정도 적지 않다. 특히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이니 부담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랴만 추석을 앞둔 서민들의 이마엔 깊을 주름이 늘어만 간다.

연휴가 짧다할 순 없지만 가족과 친지들과의 만남과 기쁨도 잠시뿐,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꽉 막힌 도로에 자동차를 올려 줄을 서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TV 뉴스를 보면 귀성길 차량 행렬이 줄을 이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12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된다는 둥, 어디에서 빈집털이범이 잡혔다는 둥, 자동차 사고로 몇 명이 사망했다는 등 각종 사건사고 소식이 평소의 몇 배나 되는 듯하다.

또한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형편이 어려워 명절이 무서운 이웃들과 고향을 두고도 갈 수 없는 실향민들, 자식들에게 버림받아 외롭고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과 어떤 이유에서건 부모와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생계와 싸우고 있는 나이 어린 가장들이 부지기수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전지전능자(全知全能者)’는 무엇을 하고 계시는 지 야속하다는 마음까지 든다.

본래 `한가위’의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 동안 짠 베의 양을 가지고 진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 라는 말이 나왔으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기 때문에 `갚는다’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그래서 한가위를 맞으면 사람들이 평소의 은혜를 갚기 위해 이런 저런 선물들을 준비하고 인사를 다니는 것일까? 한가위를 맞아 조상 묘를 벌초하고 조상들의 건전한 삶을 생각하며 평소 자리하지 못했던 한 핏줄과의 정을 나누는 일은 우리 역사를 남의 나라에 빼앗길 정도로 정체성을 점점 잃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특히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한가위만큼은 사과상자와 굴비상자에 돈을 채워 나눌 순 없더라도 소외된 이웃과 남의 핏줄의 불행도 한 번 헤아려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으로 맞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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