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서원 뜰에 배롱나무 심은 뜻은...
<대구논단>서원 뜰에 배롱나무 심은 뜻은...
  • 승인 2009.10.0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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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홍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이제 9월을 지나 10월, 교내에 있는 배롱나무(일명 백일홍)의 꽃들이 지고 있다. 몇 년 전 학교로 온 이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아름다운 문천지, 그리고 교내의 나무들이었다. 특히 교내 곳곳에 피어 있는 배롱나무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몇 년 전 본 강릉 오죽헌의 배롱나무, 올 가을 본 고창 선운사의 배롱나무 역시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나무(꽃)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이름의 의미를 먼저 알고 나무(꽃)를 좋아하는 경우가 있고, 나무(꽃)의 형태나 꽃의 상태를 보고 그 나무를 알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 중에서 배롱나무는 후자가 먼저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동시이다. 나무의 아름다운 자태와 상징성을 알게 된 것이 비슷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배롱나무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이름도 많다. 꽃이 100일 동안 핀다 하여 나무 백일홍[木百日紅], 백일홍, 또는 자미(紫薇)라고 부른다. 나무 아래 부분을 만지면 먼 가지가 움직인다고 해서 간지럼나무, 가을 추수할 때까지 피어있다고 하여 밥 나무라 불린다. 나무줄기가 매끈하여 원숭이가 떨어지는 나무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부처꽃과(Lythr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키가 5m 정도이며, 7~9월에 붉은색의 꽃이 피며, 간혹 흰꽃이 피는 품종도 있다. 이 나무는 양지 바른 곳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254년에 쓰여진 `보한집(補閑集)’에 자미화(紫薇花)가 처음 언급되었다. 부산 양정동의 약 800년 된 배롱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무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마을 바다건너 섬에 머리 3개가 달린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 이무기는 마을을 해치겠다고 하면서 처녀를 바칠 것을 요구한다. 힘없는 마을 사람들은 처녀를 바칠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해 한 처녀를 바칠 차례가 되었다.

그 처녀에게는 사랑하는 한 장사(壯士)가 있었다. 그래서 이 장사는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하여 처녀 대신 처녀 복장을 하고 이무기를 해치러 갔다. 가기 전 처녀와 약속하기를 지금은 붉은돛을 달고 가지만 이무기를 죽이고 돌아올 때는 흰돛을 달겠다고 약속하였다.

장사는 떠나고 처녀는 그를 위해 100일 기도를 올렸다. 마침내 장사는 이무기를 무찔렀다. 그러나 너무 기뻐 돛을 바꾸는 것을 잊어버렸다. 흰돛을 달지 않고 돌아오는 배를 본 처녀는 그만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장사는 처녀를 장사지냈다. 그런데 그 처녀의 무덤에는 피처럼 진한색 꽃이 100일 동안 피었다고 한다. 이 꽃을 백일홍이라 한다.

그래서 꽃말은 “떠나간 님(벗)을 그리워 함”이다. 최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고향에서 함께 했던 배롱나무 3그루가 고인의 묘역에 심어졌다. 생가 터의 흙에 이어 배롱나무가 고인과 함께 하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의 묘역에 배롱나무를 이식하게 된 것은 고향인 하의도를 비롯한 남도에 많이 분포돼 있고, 강인한 생명력이 김 전 대통령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라 한다.

세상의 꽃들이 피어있는 시간은 10일을 넘지 못한다고는 한다. 백일홍 역시 백일 내내 피어있는 것은 아니다. 한 쪽에 꽃이 피어 있는 동안 그 옆에서는 또 다른 봉우리를 준비한다. 꽃잎 하나가 지면 연신 옆에서 또 다른 꽃을 피워내니 백일동안 붉게 피어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보통 나무들은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보호하지만 배롱나무는 매끈한 속살을 그대로 내놓고 있다. 어릴 때는 껍질이 있지만 성장할수록 껍질을 벗고 맨질맨질해 진다. 그 껍질은 성장하면서 매끈한 정도를 더해 간다. 굵지 않으면서도 단단하고 당당한 가지들은 하늘을 향한 채 도도하게 서 있다. 멋진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이 나무는 주로 묘지나 사당, 그리고 서원과 절집 마당, 선비들의 원림(園林)에 많이 심는다. 병산서원에 배롱나무가 많은 것도 같은 이치이다. 즉 가식이 없으며, 겉치레 없이 알몸으로 서 있는 배롱나무처럼 학자들 역시 가식 없이 순수한 본질을 닮으라는 것이다. 그대로 드러내도 떳떳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 살겠다는 뜻이다. 즉 청렴을 상징하며,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의미한다. 다만 양반 집 안마당에는 심지 않는다. 나무줄기가 나신을 닮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어떠한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살아오는 동안의 행동에 대하여 당시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다른 사람도 당연히 하는 것이니까, 그 당시에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변함에 있어서 스스로에 대한 자기반성은 없는가!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반성할 사람은 나 자신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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