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동양 평화를 위한 安重根 의사의 꿈
<팔공시론>동양 평화를 위한 安重根 의사의 꿈
  • 승인 2009.10.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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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논설위원)

지난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지 1백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한국의 독립 운동을 상징하는 애국자였다면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시대 일본 현대화를 이끈 핵심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이 두 역사적 인물에 대한 양국의 추모 행사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한국과 일본은 모든 부문에서 국제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그렇고 국제 무역과 같은 경제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정치, 외교적으로나 학술적으로는 긴밀한 협조 관계를 맺고 있다.

북핵 문제와 같은 외교적 현안에 대해서 서로의 협조가 필요하다. 자연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과 같은 기초 학문 분야에서 연구자들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고 우리들이 많은 것을 배워 왔다. 경쟁과 협조라는 서로 모순되는 관계가 우리와 일본의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일 양국의 관계는 평화롭지 못하였다. 임진왜란과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가 그러했다.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지간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조선 식민지 착취는 지금 현재까지도 그 상처가 생채기로 남아있다.

일본에 대한 분노의 무거운 짐을 언제까지 짊어지고 가야할 지 오늘날 우리의 고민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사과 이후일 것이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잊을만하면 되풀이 되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과 독도 영유권 주장이 우리에게는 적반하장이고 어불성설의 가시이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과 요구에 대해 늘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때로는 자신들은 사과할 만큼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사사건건 과거 일을 들먹이며 트집 잡는다고 한다. 그들은 과거사에 발목 잡혀 한치 앞도 나아가지 못하는 한일관계를 두고 오히려 한국인들의 무한책임론을 탓하고 있다.

양국의 미래는 결국 일본이 아니라 우리 손에 달려있는 것 같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그들이 사과하지 않는데도 우리가 먼저 용서하고 이해하자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한일관계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먼저 양보하자는 것이다. 사과는 가해자의 의무이지만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양보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본과의 운명적 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협조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서 멀리는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결심할 시점이다. 그것을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부터 조금씩 해소시켜 나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우리들이 과거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는 일본 문화에 대해 적대감을 버리기는 쉽지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일본 문화를 여전히 `일본풍(日本風)’이라고 부르거나 `왜색(倭色)’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한류(韓流)’의 열기 속에 한국의 많은 가수나 연예인들이 일본인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일본 노래나 일본 연예인들의 한국 활동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일본의 흉내를 내기라도 한다면 인기의 여부와 관계없이 비난 받고 결국 폐지되기도 했다.

얼마 전 우리에게도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 가수들이 겪은 왜색 논란은 세대를 뛰어 넘어 우리 국민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일본에 대한 반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라고 하더라도 일본을 찬양하거나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장식물로 꾸미고 나왔다가는 국민적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제창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은 한일 관계의 미래를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니 이 세 나라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만주의 여순(旅順)에서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고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공동의 화폐를 사용하며 공동의 군대까지 만들자고 했다.

게다가 경제적 선진국인 일본이 앞장서고 중국 조선과 함께 동북아시아 공동 번영과 부강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일본 제국주의가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야망에서 제창한 대동아공영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론이었다고 평가된다. 백년이 지난 지금이야말로 안중근 의사가 꾸던 꿈이 실현할 그때가 된 것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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