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막걸리 예찬
<대구논단> 막걸리 예찬
  • 승인 2009.11.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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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흥 (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최근 서민의 술인 막걸리의 인기가 높다. 서민의 술이 청와대에서 열리는 행사의 공식 건배주로 채택되었다. 웰빙 열기와 함께 일반인들 역시 자주 애용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각종 색깔의 막걸리가 유행하고 있으며, 일본인 승객을 겨냥하여 아시아나항공은 일본 노선 에 막걸리 서비스에 들어갔다.

막걸리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받아오면서 살짝 맛 본 기억, 왜 그때 아버지는 나에게 막걸리를 외상으로 받아오라고 하셨을까? 가게 아주머니는 돈을 가져오라고 야단치면서(재미로 하셨겠지만),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다음에는 꼭 가져오라는 말과 함께 주전자 가득 막걸리를 주셨다.

집으로 오면서 살짝 맛 본 달짝지근한 막걸리 맛은 잊을 수 없다. 또 어린 시절 동네잔치 때 큰 독에 있는 막걸리를 어른 몰래 먹다가 술이 취해서 횡설수설하던 기억, 가을 들녘 추수할 때 어머니가 주신 사이다를 섞은 막걸리의 시원하면서도 톡 쏘는 맛도, 비오는 날 친구와 파전과 함께 먹던 그 맛도...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요 화합의 술이다. 힘든 농사일 중 잠시 쉬는 동안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는 농사일을 지속시키는 큰 힘이다. 막걸리는 지역마다 맛이 다르다. 지역마다 물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 그 맛과 익어가는 시간도 다르다.

1960년대 쌀 소비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집에서 쌀 막걸리 만드는 것을 금지시킨 이후에도 어머니는 일꾼들을 위하여 막걸리를 만드셨다. 경찰들이 조사 나왔다는 소리가 들리면, 막걸리 동이를 머리에 이고, 산으로 도망가시던 기억이 난다.

막걸리를 좋아하던 박정희는 1966년 여름, 고양에서 골프를 즐긴 후 주막 `실비옥’에 들러 막걸리를 마셨다. 그 막걸리 맛에 반해 지속적으로 찾았다. 능곡양조장에서 가져온 배다리 술도가의 막걸리는 이후 13년 동안 청와대에 공급되었다.

10·26사건이 있던 날 오후까지 그 곳에서 빚은 막걸리는 청와대로 배달되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그날 저녁 시바스리갈이라는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사후 시바스리갈이라는 양주가 유행하였던 것을 보면 참 세상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막걸리는 탁주(濁酒)라고도 하며, 청주(淸酒)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 짠 술을 말한다. 막걸리 술독에 용수를 박고 떠낸 술을 청주(淸酒)라고 하며, 청주는 한국에서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국주(國酒)가 되었다. 이것을 다시 증류하면 소주(燒酒)가 되는데, 몽골이 고려를 지배하던 시절 전래되어 이후 안동과 개성 등지에서 단식증류 소주 제조술이 전승되었다. 청주나 소주는 귀족이나 양반의 술이다.

그런데 1965년 박정희 정권은 쌀 부족을 이유로 쌀 막걸리 제조를 금지시켰다. 이에 쌀을 원료로 한 단식증류 소주의 명맥이 끊어졌다. 그 대신 밀가루 막걸리의 탄생과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희석식 소주 시장이 급성장했다. 당시 유행한 희석식 소주는 도시에 공장들이 생기고, 노동자들이 값싸게 마시던 술이었다.

정부가 노동자의 술인 소주 값을 올리지 못하게 하면서 소주는 서민의 술, 노동자의 술로 자리 잡았다. 힘든 노동 후 퇴근 길 포장마차에서 찬바람을 맞으면서 마시는 한 잔의 소주는 노동자에게 고통이자 위로였다. 박정희는 소주 보호 정책의 명목으로 당시 200개가 넘는 소주회사를 각 도마다 한 개씩으로 제한하면서 지역 대표소주가 생겨나게 되었다. 오늘날 희석식 소주는 수출까지 하게 됨으로써, 한국은 희석식 소주의 강국이 되었다.

지금 농민들은 쌀값의 대폭락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때 쌀로 만든 막걸리의 유행은 너무나 반가운 것이다. 그리고 1985년 해제된 전통 증류식 소주의 제조 역시 반가운 조치이다. 각 집안마다 가양주(家釀酒)라는 이름으로 없어진 술들이 복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안동소주의 일반용 판매는 전통 소주의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듯하다. 앞으로도 쌀을 이용한 제품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판매되어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 주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4대강, 세종시, 지방시군통합 등을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이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을 수정하거나 새 정부 들어 새롭게 추진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국민들의 이야기는 배제하고, 정부 혼자 독주하는 느낌이다. 마치 만찬장에서 막걸리로 건배하며 화합을 외치면서 돌아서서 양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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