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원수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대구논단>원수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 승인 2009.11.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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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화폐에 얼굴 도안이 실리는 인물은 그만큼 그 나라에서 중요한 일을 한 사람으로서 존경을 받는 분이다. 미국 달러에는 새로이 나라를 세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나 노예 해방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한 링컨 대통령의 초상화가 실려 있고, 뉴질랜드 화폐에는 지배국인 영국을 제치고 최초로 히말라야에 오른 힐러리 경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우리나라 돈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일본에서 가장 큰 화폐 단위인 1만 엔 권에는 누구의 모습이 실려 있을까? 일본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지만 우리로서는 매우 달갑지 않은 사람이다. 이 사람 때문에 우리는 36년간이나 일제에 억눌려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바로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이다.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탈아(脫我)’`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경리, 주물공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던 중 마침내 `봉건적 문벌제도에 분노하는 동시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어 혼자서 울곤 했다’고 회상할 정도로 절박한 심정으로 학문의 길로 접어든다. 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동기가 절실하였기에 그는 내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그즈음 일본에는 미국의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왔다. 이른바 `페리 쇼크’였다. 그는 서둘러 나가사키로 가서 서양말 공부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네덜란드 말과 문화를 배웠으나 이내 미국말로 바꾸었다. 네덜란드의 시대가 가고 미국 시대가 온 것을 절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다짐하였다.

`그래 말이 아니라 그들의 실용 정신을 익혀야 한다.’ 후쿠자와의 공부는 말하자면 `서기(西器)’를 배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하여 서양말 공부와 더불어 일본 열도를 지키기 위한 포술(砲術)을 익히는 공부를 병행하였던 것이다.

후쿠자와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의 장서조차 팔아치웠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무사였지만 진귀한 책도 여럿 가지고 있는 장서가였다. 그의 아버지는 책을 구한 다음 그 책을 구한 유래를 표지에 적어두었는데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명률(明律)`의 ’상유조례(上諭條例)`를 마침내 사게 되어 무척 기쁘다.

그런데 이날 밤 막내가 태어났다. 그리하여 나는 ’상유`의 `유(諭)’자를 따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고 써두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팔아 학비를 마련하였으니 후쿠자와는 그를 감싸고 있던 전통이라는 탯줄을 과감히 잘라버린 셈이었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오는 법이듯이 그는 마침내 1860년 미국에 갈 기회를 얻게 된다. 그것은 일본개벽 이래 미증유의 사건이라 할 만하였으니 일개 서생이 일본 사령관의 수행원 자격으로 그 유명한 간린마루에 승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응보였다. 서툴렀지만 영어를 몇 마디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후쿠자와는 미국을 더 방문하고 유럽도 다녀왔다. 이때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한 `서양사정’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제 그는 서서히 일본을 대표하는 계몽사상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후 그는 서양의 병원, 우체국, 은행, 징병제, 도서관 제도를 일본에 도입하여 일본 사회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다. 또한 신문을 발간하여 자신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전파해 나갔다.

1885년 3월 16일 그가 설립한 지지신보(時事新報)에 실은 사설에서 그는 `오늘의 꿈을 펴기 위해서는 지체 없이 중국· 조선을 접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통탄스럽게도 이 주장은 일본이 이웃을 강점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고 만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의 후원자, 청일전쟁을 독려한 주전론자, 탈아입구론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깬 원흉. 이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그의 또 다른 얼굴이지만 그의 선각자 정신은 소홀히 할 수 없다.

그의 정신은 그가 설립한 게이오대학교(慶應大學校)를 통해 지금도 일본 젊은이들의 피 속에 면면히 흘러내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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