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노·사 관계 변화의 첫 걸음
<대구논단>노·사 관계 변화의 첫 걸음
  • 승인 2009.12.0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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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지방자치연구소장,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문제는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이념의 문제, 정치의 문제로 까지 확대되었다. 우리는 대·소기업의 노조가 태업을 일삼고 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다.

처음에는 기업주가 노동자에게 합당한 처우를 해 주지 않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날이 갈수록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싸늘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노동자들이 북을 치고 박자를 맞춰가면서 똑 같은 몸짓과 행동을 보여주는 모습이 사회갈등 여러 현장에서 그대로 복사되고 심지어는 아파트 주민, 농촌 주민들까지 노동자의 그것을 본받아 투쟁 일변도로 가는 것을 보고 뜻있는 국민들은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외국인들로부터 한국은 `데모의 나라’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노동자의 생존보호를 위한 국가의 노동정책은 절대 필요하나 국민 다수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개선· 변화되는 것이 옳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4일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정부가 복수노조 허용시기, 노조전임자 임금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냄으로써 노사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단일노조 보다 복수노조를 허용함으로써 노조의 힘을 분산할 수 있고 회사일은 하지 않으면서 독립 사무실에서 노조관계 일에만 전념하는 노동자들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고 뭣하면 대형노동단체를 등에 업고 정치투쟁의 전사로 나서는 등의 오랜 노동운동 관행을 깨뜨려 보자는 의미가 숨어 있을 것이다.

경영자 측에서는 복수노조 허용으로 회사 내에 여러 노조들이 군림하면 강성노조가 생길 우려도 있고 이로 인해 글로벌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아주 찬성하는 분위기다. 반면 노조 측은 울며 겨자 먹기로 두 가지 합의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한국노총이 노조 측 대표로 참여했기에 이러한 합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전임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월급을 못 주게 되면 노조 스스로 수십 수백 명의 전임자 임금을 부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임자수는 줄어 들것이고 정치적· 투쟁적 노동운동의 주도 세력도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많은 수의 전임자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노조조합원들이 더 많은 조합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디 가능하겠는가.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원래 전임자 수가 1-2명밖에 되지 않아 계속 회사가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한 것은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의미도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일단 3자 합의로 노사관계 선진화의 첫걸음은 땠다고 볼 수 있지만 미심적은 부분도 다분히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껄끄럽겠지만 한국노총보다 더 알려진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그 시기를 2년 6개월 후로 늦추고 노조전임자 임금은 사업장 실태조사를 벌여 내년 7월부터 타임 오프(time-off)제를 적용하기로 했는데 운용 면에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복수노조 설립허용 시기가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시기와 거의 맞물려서 법집행이 순조로울지 측정할 수 없다. 정권 말기나 정권이 바뀌면 권력의 입맛대로 법이 요리되기 때문이다. 또 타임오프제의 적용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어 정부가 자의적으로 운용의 폭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노사가 수용 가능한 현실적인 타협안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타임오프제는 유럽에서 활용되고 있는데 영국의 경우 교섭·협의·고충처리 등 노조의 의무 활동에 대해서는 주당 6-10시간씩 유급처리하고 있지만 노조 자체 조합 활동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사관계의 선진적 변화를 위해 정부와 한국노총, 경총이 어렵사리 합의한 내용들이 조속히 법 개정을 통해 자리매김을 해야 하고 뒤이어 만들어 질 법시행령도 현실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 담겨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정치권도 노동자의 생존 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우를 범치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국민들이 노동계를 보는 시각이 어떠한지 생각하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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