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와 재생으로 우리시대의 단상 탐구
해체와 재생으로 우리시대의 단상 탐구
  • 황인옥
  • 승인 2017.09.26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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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 쿠서 이지현 개인展
책을 오브제로 활용
1년간 1천여권 작업
도서관처럼 꾸며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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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뜯고 두드리는 방식으로 현대인의 정체성을 녹여낸 책 작업으로 도서관을 재현한 이지현의 전시가 쿠에서 열리고 있다.

열망해 마지 않았던 도서관을 재현해 놓았다. 실제 도서관에서 책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바람을 기자에게 피력한지 만 5년 만이다. 하지만 절반의 실현이다. 도서관이 아닌 갤러리에 도서관을 재현했기 때문. 그렇더라도 작가는 만족스럽다고 했다.

“실제 도서관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가지고 작업해서 그 도서관에 전시하는 것을 열망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단은 그 차선책으로 갤러리에서 도서관을 재현해봤다. 쉽지 않은 내 기획을 흔쾌히 받아들여준 아트센터 쿠 관장님의 배려가 컸다.”

현대미술가 이지현의 ‘기록하다. 나를’전이 아트센터 쿠(대전 유성구 엑스포로 97)에서 11월 15일까지 열린다. 도서관을 재현한 작품과 책장에 꽂힌 책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소개한 작품, 그리고 책을 해체해 배와 바다를 표현한 작품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이지현 작업의 전반을 이해하는 성찬 같은 전시다.

이지현 예술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해체’와 ‘재생’이다. 그의 예술적 토대인 이 두 개념은 어린 시절의 예술적 촉으로부터 왔다. 소년 이지현이 우연히 시골길을 가다 토끼의 사체를 보고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부패과정을 지켜보면서 충격과 흥미를 동시에 느꼈다. 그러면서 ‘해체’와 ‘재생’이 머리에 각인됐다.

“늘 우리 곁에서 변하지 않는 대상으로 여겨졌던 토끼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충격이자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죽은 토끼가 부패되어 하얀 형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내게는 너무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했다.”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해체와 재생 작업은 하나의 오브제에서 순차적으로 행해진다. 책 오브제의 경우 책을 해체하고 책벌레 제거를 위해 소금물에 담갔다 말린다. 그리고는 해체된 책 표지와 갈피를 망치나 예리한 도구로 뜯는다. 그 과정에 작가의 감성이 담긴다. 해체와 뜯기가 끝나면 해체 이전의 상태로 재조합된다.

첫 책 오브제는 도덕교과서였다. 이후 국사와 교련 등의 교과서와 그날그날의 사회상이 담긴 신문지로 확장해갔다. 그가 “풍경화가가 우리시대의 도시를 그리고, 인물화가가 사회 곳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며 동시대의 삶을 들여다보듯, 그 역시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보는 우리시대의 근원적인 이야기가 뭘까 고민했는데 도덕교과서와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담긴 책과 신문이 우리시대를 압축한 것 같았다.”

오브제는 책에서 옷으로 확장됐다. 중국과 영천 등의 레지던시에 참가하며 그 지역 주민들의 옷을 기증받아 망치로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옷 장업도 병행됐다. 올해는 제주 해녀들의 옷을 직접 제작해 두드린 작품으로 제주도립미술관에 소개해 과거와 현재의 삶을 엮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옷은 나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온기와 생각이 그대로 묻어 있어 보다 직접적으로 우리사회를 표현할 수 있다.”

그가 오브제로 선택하는 책들은 모두 작가의 서재에 꽂혀있거나 그가 읽은 책들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가져오기도 한다. 이번에 도서관을 재현한 작품은 전국의 서점을 뒤져서 공수해온 것들이다. 인문학책이 주를 이룬다. 인문학은 ‘사물의 본질 혹은 사물의 실존’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현대인의 정체성을 건드리는데 제격이서 선택한 장르다.

하지만 이번 책 작업은 결이 좀 다르다. 예전 작업이 사회바라보기와 본질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 작업에는 작가 개인의 본질에 대한 탐색도 개입됐다. 1천여권이라는 책이 주는 무게감, 해체하고 뜯어야 했던 1년여 동안의 지난한 노동이 작가 자신에게로 향한 것. 전시 제목이 ‘기록하다. 나를’이 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왔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작업실에 박혀서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뜯고 또 뜯었다. 동료작가들이 저러다 죽겠다고 걱정할 만큼 미친듯이 작업했다. 그러한 반복된 행위를 통해 무념무상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내면속으로 침잠해가는 나와 만났다.”

여전히 실제 도서관에서 책 작업을 구현하고 싶다고 했다. 1년에 한 도시나 국가의 도서관 하나를 정해서 그 지역에 살면서 작업을 하는 방식이다. 도서관에서 최소한의 비용만 제공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도서관의 책들을 그 공간에서 해체하고 재생한 후 사람들이 읽었던 책이 꽂혀있는 책장 사이에 설치하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가는 것은 꿈같은 상상이다. 그것이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충분한 준비가 됐다.” 042-864-2248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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