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르는 아저씨’가 경찰관이라도 되면 안 나오던 눈물이 줄줄 흐르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경찰관은 `모르는 아저씨’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경찰은 어릴 적 무서운 존재였다가 자신이 성장함에 따라 무섭지 않은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영국에서는 두 사람이 싸우는 장소에 경찰관 1명이 나타나면 그 싸움은 끝이 난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경찰관도 그 싸움에 말려들어 세 명이 엉겨 붙어 싸움을 계속한다고 한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구대 폐쇄회로(CC)TV는 실추된 경찰의 공권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술만 먹으면 지구대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은 지구대마다 한명쯤 있을 정도다.
언론사 경찰 팀 기자들은 아침이면 경찰서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른 시간 경찰서 지역형사 팀에는 아직 술에 취한 채 아무렇게나 코를 골며 잠이 든 사람을 볼 수 있다. 취객의 한쪽 손목에 수갑이라도 걸려 있고 의자 몇 개가 널브러져 있으면 `안 봐도 비디오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상습범이어서 경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고 그냥 행패만 부린다. 행패만 부려서는 대부분 범죄자로 낙인찍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용산 철거민 참사를 두고 말이 많다.
경찰의 지나친 진압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거뒀다는 비판론자들의 달변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 저냐겠지만 우리나라 경찰의 공권력은 분명 문제가 있다. 경찰이 `거기 서’라고 하면 도둑은 즉시 그 자리에 설 수 있고 `꼼짝마’라고 하면 꼼짝하지 않을 수 있는 공권력은 과연 불가능 한 것일까?
천혜렬기자 racer76@idaegu.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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