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쇠(規矩)
그림쇠(規矩)
  • 승인 2018.03.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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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교장
겨울 가뭄 때문에 대구에서도 ‘물을 아껴 쓰자.’는 자막이 텔레비전에도 여러 번 나왔다. 마침 우수에 비가 내리고, 경칩에도 비가 내렸다. 그러더니 경칩이 지난 며칠 후엔 폭설이 내려 대구시내 교통이 마비되고 휴교한 학교들도 더러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경칩이 지나면 왕이 농사에 관한 선농제를 지냈다. 본격적인 농사 준비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24절기의 중요한 시점이 경칩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남을 가르치는 방법에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가 제 때에 내리는 비가 초목을 저절로 자라게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 있다. 둘째가 덕을 이룩하게 하는 것, 셋째가 재능을 발달시켜 주는 것, 넷째가 물음에 대답해 주는 방법, 다섯째가 혼자서 덕을 잘 닦아 나가도록 해주는 것이다.

작가 윤구병은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부안군 변산에서 농부 철학자가 된 사람이다. 어느 날 달력을 들고, 동네 할머니에게 “할머니 콩은 언제 심어요?”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음, 올콩은 감꽃이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지요.”하더란다. 농부 철학자는 머쓱해져 들고 있던 달력을 슬그머니 감추었단다. 그 동네엔 유독 감나무가 많아서 모든 사람들의 생활 기준이 되는 정확한 정보 지식은 어떤 달력의 날짜보다도 감나무가 중심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난겨울 우리나라는 유난히 추웠다. 그런 연유로 봄꽃이 피는 시기도 늦어진다고 한다. 올 농사를 작년 달력의 날짜와 맞추어 곡식을 파종하는 것은 당연히 계절에 맞지 않으리라. 같은 계절이라도 지역에 따라 파종하고 가꾸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또 토질에 따라서도 같을 수 없다.

교육에 있어서 제 때에 내리는 비가 초목을 저절로 자라게 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될까? 현재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가 몇 년간은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다. 교육부는 2018년부터 ‘교과서’를 가르치던 수업에서 ‘교과서’로 배우는 수업을 실시한다고 한다. 가르치는 것은 교수이다. 당연히 교사중심수업이다. 배우는 것은 학습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학생중심수업이다. 이론적 근저를 단순지식 주입보다 미래 삶에 필요한 협력, 인성, 창의로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 때문이라고 한다. 벌써 ‘자기주도적학습’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론과 실제의 거리를 얼마만큼 좁힐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올해 국어과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처음 실시된다. 학생들에게는 호기심이 생길만하다. 반면에 교사는 여러 명의 학생이 읽은 책의 내용을 전부 흡수해야 하는 최대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수업의 설계자인 교사에겐 책을 미리 많이 읽어야 한다는 커다란 부담도 있다. 어떻든 책 읽기는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고대 중국 유궁국의 군주 예는 활을 잘 쏘는 명궁이었다. 예가 남에게 활 쏘는 방법을 가르칠 적에는 과녁의 중앙에 맞추기 보다는 반드시 활을 충분히 당기는데 마음을 쓰게 하였다. 반드시 과녁에 맞히겠다는 마음 쓰는 태도를 중시하였던 것이다.

맹자는 배우는 사람 역시 활을 충분히 당기도록 하는 원칙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과녁에 맞느냐 안 맞느냐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대목수는 남을 가르칠 적에 반드시 ‘그림쇠(規矩)’를 가지고 가르친다. 배우려는 사람 역시 ‘그림쇠(規矩)’를 가지고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규구(規矩)는 목수가 쓰는 그림쇠(원모양과 네모모양을 그리는 쇠, 컴퍼스), 곡자, 수준기, 먹통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목수들에겐 필수품이다.

맹자가 말한 과녁은 교육과정이고, 그림쇠는 교과서다. 교과서는 그냥 교육과정의 목표달성을 위한 가장 멋지고 훌륭한 자료일 뿐이다.

2018년 ‘교과서’로 배우는 수업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사회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유신체재’를 ‘유신독재’로 바꿨다.

‘새마을 운동’은 사진을 삭제하고, ‘일본군 위안부’ 용어는 새로 삽입했다.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했다고 한다. 미래 삶에 필요한 창의성을 기르는 가장 멋지고 훌륭한 자료론 글쎄?

그림쇠(規矩)의 또 다른 의미는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표준, 기준, 법도이기도 하다.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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