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아픔 간직한 백령도에 평화통일 염원 담아”
“분단의 아픔 간직한 백령도에 평화통일 염원 담아”
  • 황인옥
  • 승인 2018.04.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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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두무진에서 장산곶’ 신태수 작가
남북정상회담 열린 ‘평화의 집’에
백령도 두무진 풍경 담은 작품 걸려
현대미술 통해 실경산수화 재해석
“백령도엔 아픔 치유하는 힘 있어
작품 바라보며 마음 유연해졌길”
서해두무진에서장산곶
신태수 작 ‘서해, 두무진에서 장산곶’.

작가_신태수
신태수 작가
‘자고나니 유명해졌다’는 상용구가 자신을 향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작가 신태수 이야기다. 누구나 자고 나니 일약 스타 작가가 될 수는 있지만 신태수보다 드라마틱 한 경우는 드물다. 지난 27일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평화의 집’ 3층 연회장 헤드테이블 뒤에 작품이 걸렸고, TV 생중계를 통해 두 정상이 건배하는 장면이 전국은 물론 전세계로 타전되면서 그의 작품도 유명세를 탔다. 작품은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린 2014년 작 ‘서해, 두무진에서 장산곶’(가로 430㎝,세로 130㎝)이다.

회담 이틀 후인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시 봉정사 인근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신태수는 의외로 담담했다. “내 작품이 역사적인 장소에 걸린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어차피 평생 작업해야 하는 작가다. 긴 작업 속에서 보면 하나의 사건일 수는 있으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작업 태도에서 보면 큰 의미는 없다”고 했다.

한반도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소에 가장 드라마틱하게 작품이 걸렸다. 작품은 애초에 행사기간 동안 임대키로 했지만 행사가 끝난 직후, 새롭게 1년 임대 연장 제의가 와 연회장에 계속 전시하게 됐다.

작품이 연회장에 걸리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숨가빴다. 회담일을 불과 보름여 앞두고 작품 임대 의뢰를 받고, 세부적인 과정들이 진행됐다. “내 작품 두 개를 콕 집어 이미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두 작품 중 ‘서해,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고 작품을 보냈다.”

역사적인 현장에 두 작가의 작품이 간택(?)된 바탕에 작품성에 대한 인정이 깔려 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대한 염원으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연회장에 걸리게 된 신 작가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신 작가의 예술적 지향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그가 “사람들의 마음이 평온해지는 실경산수화를 그리고 싶다. 누구나 다 좋은 산수화를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평온해진다”고 했다.

“‘서해, 두무진에서 장산곶’에는 백령도 사람들의 이야기와 남북대치 상황, 그리고 백령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져 있다. 백령도의 아름다움과 아픔이 담긴 만큼 치유와 힐링의 요소가 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유연해지고 그것이 확장되면 세계평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바다를 동경했다. 그의 고향은 경북 의성이다.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은 산천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보다 광활한 세상을 상상 하곤 했다. 그럴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은 감성을 흔들었다. “섬 노래를 듣고, 섬 관련 책을 구해다 읽으며 섬에 대한 동경은 조금씩 싹을 틔워갔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다였다.”

성인이 되어서 동해와 남해를 두루 다녔다. 때로는 바다 풍경을 작품에 담기도 했다. 그러나 가벼운 관심에 불과했을 뿐. 그러다 서해5도를 만나면서 섬이 본격적으로 그에게로 왔다. 2012년이었다. 물론 계기는 있었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한 평화미술 프로젝트 ‘평화의 바다-물 위의 경계’전을 위한 서해5도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소연평도 등 서해5도를 작가적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이듬해 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로 1년 동안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5도를 화폭에 담았다. 드로잉까지 합하면 서해5도를 그린 작품이 100여점을 웃돈다.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걸린 작품도 이 시기 그린 작품이다.”

작가에게 서해5도는 아름다운 섬 풍경 이상의 의미다. 남북분단 속의 군사적 대치 현장이라는 특수성이 풍경에 더해지고, 때로는 극한 상황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서해5도 사람들의 삶도 녹여진다. 서해5도의 멋과 역사와 삶이 모두 담긴다는 이야기다.

“서해5도, 그 중에서 백령도는 장산곶에서 우는 닭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할 정도로 북한 땅과 지척에 있다. 해변가에 철책선이 새삼 분단을 느끼게 하는 장소다. 중국어선도 떼를 이루고 불법조업을 일삼는 곳이다. 단순하게 아름다운 섬 풍경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국내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다. 작품은 실경산수화다. 직접 현장에서 풍경을 보고 그리는 방식을 선호한다. 정상회담 연회장에 걸린 작품도 실경산수로 그려졌다. 작품의 배경은 백령도 두무진.

한국화 전공자의 작품이지만 딱 봐도 전통 산수화와 결을 달리한다. 부감법과 역원근법 등 전통 기법을 차용하지만 그만의 재해석으로 재구성된 풍경이 드러난다.

풍경의 구성도 때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과감한 배치나 세부적인 묘사가 자유자재로 오고간다. 색도 과감하게 쓸 때는 쓰고, 물감도 전통 먹과 서양 물감에 대한 구별 없이 때에 따라 무시로 사용한다.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과거를 지배했던 정신이 21세기에도 적용될 수는 없다. 전통수묵화가 지향했던 사의적 태도가 지금에도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다. 정신이 달라졌으면 회화양식이나 그림재료를 다르게 해석돼야 한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경산수화다. 전통산수화의 관념적·사의적 바탕을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사의적인 흔적은 묻어있다. 바로 인간이다. 그가 부감법과 원근법을 재해석하고 물성에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데는 풍경 속에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작가적 태도가 스며있다.

그가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인 병풍도 앞바다를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세월호 사건이 이대로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이유였다. 실경산수화를 그리는 작가로써 병풍도 앞바다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 또한 실경 속에 담고 싶은 그의 인간 이야기 중 하나다.

“선조들이 부감법을 사용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대상을 보다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함이라는 답을 얻었다. 다른 말로 본질에 다가가기 위함이다.나 역시 실경산수를 그리지만 그 속에 나만의 재해석을 가미한다.”

한국화는 그림의 위용이 갖춰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구도자의 수행에 비견할 만큼 수 십년을 매진해야 비로소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할 정도다. 평생 그 경지를 넘지 못할 수도 있다.

신 작가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30대 초,중반에는 실험적인 도전에 빠져 살았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실경산수로 방향을 잡고 필법, 묵법, 구도법 등 기본적인 기법에 매달렸고, 이후 몇 년간은 그것을 풀어내는 데 또 매달렸다. 좀 더 자유로운 화풍을 위해 전국 곳곳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가 “한 순간에 금방 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선하나 담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며 “먹을 다루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수많은 날들을 공부하고 몸으로 체득해야 그것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배어 나온다”고 했다.

감정기복이 없다고 했다. 묵묵히 그냥 간다고 했다. 예술에 계량화가 어불성설이듯 외부로부터의 최고의 찬사는 의미없다고 했다. 스스로 자족하는 화가로 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경지라고 했다. 그는 천상 화가였다. “스스로 만족하는 상태에 도달하기는 힘들다. 이상이 계속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 이상이 만족할 때까지 가려면 죽을 때까지 하는 수밖에 없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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