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두번째 시집 ‘쇳밥’ 출간
김종필 두번째 시집 ‘쇳밥’ 출간
  • 황인옥
  • 승인 2018.05.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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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서 길어올린 삶

투쟁 성격 드러내기보다

현장 정서 고스란히 담아

노동자로서 정체성 압축
김종필
김종필 시인.
초설 김종필은 노동자다. 공장에서 방화문(放火門)을 만든다. 그가 일하는 노동현장은 외국인 산업연수생도 기피할 만큼 열악하고, 노동의 강도는 높다. 초설이 “천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바닥의 일”이라는 한탄조도 곁들였다.

쇳밥
시집 ‘쇳밥‘
김종필의 두 번째 시집 ‘쇳밥’이 나왔다. 표제작 ‘쇳밥’은 이번 시집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쇳밥’은 쇠붙이를 깎을 때 떨어지는 잔부스러기로, 시인은 ‘쇳밥’을 ‘밥’과 연관 지었다. 아침에 먹은 밥 한 숟가락을 퍼내 쇳밥 한 숟가락을 쌓고, 그 쇳밥이 가족이 먹을 저녁때거리가 된다는 밥의 순환과정을 처연하게 노래했다.

‘쇳밥’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냈듯, 두 번째 시집의 주제는 노동이다. 자아실현 이전에 밥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노동, 숭고함 이전에 불평등한 노동현실 등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오롯이 시에 담겼다.

그에게 노동은 설움이다. 그리고 밥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딱 거기까지다. 노동현장이나 노동자체를 투쟁적으로 다루며 노동운동가를 자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시집의 시들이 노동해방가가 아닌 노동시인 이유다.

“무릇 시라면 서정이 깔려야 하는데, 제 시에는 그런 정서가 깔릴 뿐, 투쟁적인 구호가 담기지는 않아요. 제 시들은 노동현장에서 길어 올린 서정의 편린들이죠.”

초설의 성장기는 가난했다. 4형제 중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아든 이는 그가 유일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직업군인으로 복무를 시작한 것도 집안형편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는 10년간 국군보안사 수집관으로 복무하고 사회로 복귀했다.

“계성중학교 시절 국어교사 김진태 선생님이 시 짓기 숙제를 내셨는데 그때 낸 시를 보고 극찬을 하셨어요. 시 세계의 입문이었죠. 대구공업고등학교에서 본격적인 습작을 했어요.”

그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보안사 수집관 시절을 “화려했던 시절”로 기억했다. 시는 절박함을 먹고 자라는 법. 군 복무 시절 그의 삶은 찬란했고, 시는 그로부터 멀어졌다. 시와의 재회는 방화문 제작 공장 노동자로 살기 시작하면서다. 당시 시급은 2,600원. 1년 정도는 뒤돌아볼 겨를 없이 일만 했다. 노동자의 뼈아픈 삶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그 시기 하층 노동자로 살고 있는 자신을 희미하게 보았다.

“1년 지났는데도 시급이 200원 올랐어요. 생활이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내가 하층 노동자로 살구 있구나 실감했죠.”

같은 노동이라도 급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구분도 심기가 불편한데 거기다 하층노동자와 귀족노동자의 구별도 엄연했다. 절망스러웠다. 그 불편한 심기도 오롯이 시어로 엮였다.

노동 시인으로 본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초설이 노동을 정의 내렸다. 그에게 노동은 사람이고, 노동은 곧 삶이다.

“술 마시는 행위도 노동이고, 어머니가 가족들 밥을 짓는 것도 노동이고,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도 노동이에요. 그런 노동에 위계를 둘 수는 없어요. 모든 노동은 위대하고 숭고하죠.”

그에게 시는 삶이다. 집과 일터, 만나는 사람 모두 시의 재료가 된다. 삶이 곧 시인 셈이다. 시는 또한 그와 세상을 평등함으로 이끄는 통로다. 그는 적어도 시인이라는 이름으로는 블루칼라와 하층노동자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오직 시인일 뿐이다. 그가 “시는 내 자화상”이라고 했다.

“내 시는 아픕니다. 자화상이니까요. 나는 시를 통해 아픔을 치유해요. 시를 통해 아픔을 세상에 드러내며 나를 치유하죠. 더 바란다면 내 시가 나를 치유했듯이 아픔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죠.”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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