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총량의 법칙
지랄 총량의 법칙
  • 승인 2018.05.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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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지랄’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렇다. 우리는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행동하는, 지랄 떠는 자식을 키워야한다.

중학교 때보다는 덜해졌지만 아직도 주말이면 낮 2~3시까지 침대에 누워있고, 방탄소년단 컴백쇼를 보겠다고 새벽 1시까지 TV 앞에 앉아있는 고등학생 딸아이를 보며 소리를 지를까 말까 고민하던 중 경북대 법대 김두식 교수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만났다.

김두식 교수는 착하고 예쁘기만 하던 자신의 딸이 중학교 1학년이 되더니 “엄마 아빠 같은 찌질이로는 살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고려대 법대에 들어가고, 졸업하자마자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와 변호사로 살다가 경북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책을 쓰고 인권을 위해 일한,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아빠를 찌질이라니. 늘 칭찬과 존경만 받아오던 그에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살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고집하는 딸을 보며 고민이 깊어갔다.

김두식 교수는 유시민의 여동생으로도 잘 알려진 사회운동가 유시주 희망제작소 이사에게 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유시주 이사로부터 이런 대답을 들었다.

“사람에게는 타고난 지랄의 양이 정해져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지랄을 사춘기에 다 떨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남은 양을 다 써야한다. 교수님 딸은 지금 타고 태어난 지랄을 쓰고 있는 중이니 걱정할 것 없다.”

김두식 교수는 지랄총량의 법칙이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라고 정의하며 딸을 이해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최근 중2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지랄 총량의 법칙이 엄마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중학교 때 지랄을 떨지 않으면 나중에 더 커서 지랄을 떨 수 있으니 지금의 아이를 이해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한 엄마들이 지랄 총량의 법칙을 생각하며 “고등학생 때나 성인이 돼서 이 난리를 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저러는 게 낫다”고 위안한다.

생각해보니 나도 내가 타고 태어난 지랄을 쓰면서 살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동생과 그토록 싸웠던 것도, 사춘기 때 가출하겠다고 각오하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던 것도, 대학 때 술에 취해 길에 누워있었던 것도 다 내가 타고 태어난 지랄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돌도 안 된 딸아이에게 “왜 엄마 말을 안 듣냐!”고 소리를 지르다가 애와 함께 울었던 것도 어쩌면 그 나이까지 남아있던 지랄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아이가 친구와 싸우고, 학원을 빠지고, 선생님 말씀을 안 듣고, 엄마한테 말대꾸하면서 지랄을 떤다. 그럼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아이의 인생은 망가질까? 천만에. 아이의 인생에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저 엄마가 좀 열 받고 답답할 뿐 아이의 인생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엄마가 야단치고 윽박지르며 아이가 지랄을 떨지 못하게 막으면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랄을 떨지 못하고 중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돼서 지랄을 떨면 아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반항을 하느라 공부를 못할 테니 엄마 속은 터지겠지만 그래도 큰일은 안 일어난다. 학교 다닐 때 가장 공부 못하던 친구가 나중에 크게 성공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엄마가 무서워서 아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랄을 쓰지 못하고 성인이 되면 그때는 아이의 인생이 크게 어려워진다. 미투 가해자인 교수들, 제자를 성추행하는 교사들, 명백히 범죄를 저지르며 범죄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어른들이 바로 어릴 때 쓰지 못한 지랄을 나이 들어서 떠는 사람들이다. 어른이 돼서 그런 일을 저지르면 사람의 인생이 한 번에 망가지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말썽을 떠는 아이에게 “그만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어서 어서 지랄을 떨어”라고 격려해야 한다. 아이에게 지랄이 남아있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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