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지났지만 하늘 뒤덮은 포연 생생”
“68년 지났지만 하늘 뒤덮은 포연 생생”
  • 윤주민
  • 승인 2018.06.03 15: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 6·25 참전용사 인터뷰
“목숨 오가는 사투 속에
고지 탈환 위해 계속 전진
널브러진 전우 시신 충격
철원 쳐다볼 엄두도 안 나”
1
6·25참전유공자회 대구 동구지부 참전유공자들. 윤주민기자

6일은 현충일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현충일이지만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6·12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등 올해 현충일에 대한 감회는 새삼스럽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68년, 무심한 세월이 흘렀지만 참전 노병들의 뇌리에 남은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6·25 참전 용사들의 얘기를 통해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살아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여. 근데 아직도 그때의 모습이 생생해. 잊히질 않아.”

지난 1일 오후 3시께 6·25참전유공자회 대구 동구지회에서 만난 이영태(86) 씨는 1·4후퇴 때의 아찔했던 순간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이 씨는 군장에 넣어둔 모포 2장 덕택에 날아오던 총알로부터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포탄의 파편을 피하지 못해 왼쪽 눈이 크게 다쳤다. 이후 몇 차례 병원을 찾았지만 다시는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이 씨는 긴박했던 당시 함께 후퇴했던 중대장 유화복 중위를 회상하며 끝내 고개를 숙였다.

“부산 출신인 유 중위가 그때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어. 유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싶어도 알 길이 없어. 여태까지 말야.”

유 중위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이 씨는 그의 숭고한 희생을 반년 넘게 가슴속에 담고 있었다.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에 참여한 신재균(86) 씨 역시 참혹했던 그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제주도에서 96일 동안 군사교육을 받은 신 씨는 숨돌릴 새도 없이 강원도 양양의 한 산골로 투입됐다. 그리고 얼마 후 백마고지 전투에 참여했다. 신 씨는 8부 능선에서의 사투를 떠올리며 전쟁의 잔혹함을 쉽게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무전병이었던 나는 뒤에서 전우들이 쓰러지는 장면을 똑똑히 봤어. 지리적으로 위치가 불리하다 보니 올라가는 족족 쓰러졌지. 딱히 방도가 없어 보였어. 그런데 우린 계속 전진했지.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아무도 몰러….”

신 씨의 말을 듣던 이헌철(87) 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속은 달라도 참담했던 그 현장에서 같이 전투를 치르고 있었기 때문.

1950년 8월 18일, 당시 19살의 나이로 입대한 이 씨는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강원도 철원 방면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폭격에 의해 벌거숭이가 된 산, 그나마 겨우 솟아 있는 나무에 널브러져 있던 시신들의 모습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던 것.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포탄이 떨어졌지. 하늘을 뒤덮었어. 그때가 휴전되기 직전이라 그런지 엄청 치열했었어. 죽은 전우들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네.”

한편 오는 25일은 6·25전쟁 68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구지방보훈청은 대구그랜드호텔과 경산시민회관 등지에서 국가유공자 및 유족을 위로·격려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다.

윤주민기자 yjm@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