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요할 때 비로소 주위의 이야기가 들린다
내가 고요할 때 비로소 주위의 이야기가 들린다
  • 승인 2018.07.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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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연구소장
필자가 대학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가게 되고 입학식을 하기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니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갔다.

필자가 다닌 대학교는 신학교라서 모인 학생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전체적인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끝나고 과별로 선배들의 지도를 따라 다시 교실로 안내를 받았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선배들과 동기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생각하며 기대감에 설렜고, 선배들이 일렬로 앞에 서있고 ‘앉아, 일어나.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 같은 구호를 하며 일명 군기 잡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미리 짜증이 올라왔다. 교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모르며 줄 서서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한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이었다.

우리가 교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선배 중 한 사람이 ‘모두 눈을 감으세요.’라고 하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신학교라도 별 반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며 마지못해 눈을 감고 있을 때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어떤 말도 하지 말고 눈을 감고 5분간 있겠습니다.” 높임말을 썼는지, 반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위와 같은 요구를 하며 정적이 흘렀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앞에서 있던 선배가 한 말은 아직까지 내 귀에 남아있다. “앞으로 신학생이 될 우리들은 열린 귀를 가져야 합니다. 입은 닫고, 귀는 더 열어야 합니다. 내가 고요할 때 주위의 소리가 들리는 법입니다.” 정확하게는 기록할 수 없지만 이런 뉘앙스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의 머리에서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듯 ‘딸랑’하며 깨달음의 종소리가 들렸다.

정말 그랬다. 입을 닫고 눈을 감고 있으니 온 신경이 귀로 몰려 들리는 소리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이전에 들리지 않았던 옆에 앉은 사람의 기침 소리가 들렸고,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가 들렸다. 일부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선배가 왔다 갔다 움직이며 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옆 사람의 숨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의 기억은 30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한 번씩 본인의 강의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경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주위의 소리는 내가 고요할 때 들려오는 법이다.

유명한 상담사가 있었다. 배운 것도 많았고, 상담의 경험도 많았다. 방송에도 출연했고, 많은 저서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상담사였다.

하루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목이 완전히 상해서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목에 통증이 있었다. 그래서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듣는 것에 집중을 했다.

그저 “아~, 그래요? 으음~” 같은 약간씩의 추임새와 고개 끄덕임 등이 전부였다. 상담의 시간이 끝났고 내담자는 돌아갔다. 내담자가 돌아가고 난 뒤 상담자는 생각했다. ‘오늘 상담은 망쳐 버렸네. 오늘 상담실 찾은 사람은 다음에 안 올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쉬고 있을 때,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상담사님. 오늘 상담받고 간 누구누구라고 합니다. 오늘 상담은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담사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너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해서 이렇게 문자를 남깁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망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의 지금까지의 상담은 자신의 지식 전달과 노하우의 전수가 주를 이루었다. 듣기보다는 알려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을 하며 상담을 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상담사의 상담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답은 이미 그들이 갖고 있고 함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가 고요해질 때 주위의 이야기가 들리는 법이다. 이제부터 나의 입을 닫고 귀를 더 자주 열어야겠다. 가족의 이야기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더 자주 들어야겠다. 주위에 상처받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자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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