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뇌를 용감하게 만든다?
술은 뇌를 용감하게 만든다?
  • 승인 2018.08.1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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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교수
2016년 영국 의료총책임국은 적정음주 가이드라인을 통해 일주일에 14알코올 유닛, 즉 4% 맥주 500 ml 7잔, 20% 소주 700 ml (약 2병) 정도를 적정 음주량으로 발표했다. 많은 애주가들이 이에 대해 코웃음 쳤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재난적 폭염 속에서 밤마다 한잔의 맥주와 치킨으로 더위를 식히는 대한민국의 이 여름, 더더욱 발끈할 적정 음주량이다.

지난 7월 우리는 만취상태에서의 응급실 폭행 보도 여러 건을 접했다. 의료계 의 공분을 자아낸 많은 사건들 중 드물게 공영방송과 대형포털에서 다뤄주었기에 사회적 공감대는 한층 드높았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 심지어 애주가들조차 폭행과정을 동영상으로 보며 분노했다. 그리고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는 말에 불구속 수사하는 과정을 보며 주취자에 관대한 이 나라의 법에 대해 분노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 올 연초부터 많은 공직자, 교육자, 연예인, 예술인들에 대한 미투 운동이 온나라를 술렁이게 했다. 여기서도 많은 사건들이 주취상태에서 행해진 정황들이 밝혀졌으나, 미투 운동 자체에 의미를 두다보니 ‘주취상태’에서의 행동은 묻혀버렸다. 또한 수많은 공직자의 청문회에서 음주 운전은 드물지 않은 흠이 되어 버렸다. 술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평소 점잖은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이 술이 들어간 상태에서 자제가 되지 않고 용감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어떤 기전에 의해서일까.

중년기의 과다 음주가 치매의 위험을 17% 가량 높인다고 한다.

만성적 음주는 신체에서 티아민이라는 비타민의 부족상태를 초래하는데, 이는 함께 먹는 안주의 특성, 음주 후 장에서 티아민의 흡수감소, 신장 내피 세포 손상으로 인한 티아민 배출의 증가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티아민의 결핍은 뇌세포의 부종, 신경세포 DNA 의 손상, 유산산증을 초래하여 궁극적으로 비가역적인 뇌의 손상, 뇌의 위축을 초래하게 된다. 이전의 연구들에서 알코올로 인한 뇌병증 환자의 사후 부검에서 60-80%가 생전에 진단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뇌의 손상이 증상으로 나타나는 데 대한 개인별 차이나 뇌병증에 의한 경미한 증상들을 다양한 신체 상태에 기인하는 증상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아서이고, 음주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도 있을 것이다.

만성적 음주 외에 급성과음 상태의 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문제는 뇌의 일부 영역이 이런 손상에 더 민감하다는 점이다. 대뇌피질은 기억, 시공간기능, 언어기능, 전두엽-판단기능 등 인간의 다양한 인지기능에 관여하는데, 역시 알코올에 민감한 부분이다. 알코올에 의해 대뇌피질이 억제 되므로 인지능력이 저하되고 사람이 달라보이게 된다. 또한 뇌MRI 연구에서는 과다 음주자의 뇌백질 즉 뇌의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부위의 기능이 떨어져 있고, 대뇌피질의 두께가 얇아져 있음을 보였다. 따라서 술에 취한 사람은 기억력이 저하될 뿐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져 고집이 세져서 함께 한 사람과 다투고, 정보처리 속도나 판단력이 떨어져 한가지에 집착하는 등,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언행을 보이며, 사람이 달라져서 때로는 사회적으로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면 만취상태에서의 행동들에 어느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 술을 마셨으니 어쩔 수 없었겠구나’ 가 아니고 ‘ 술에 의해 그의 뇌가 엉망이 되었겠구나’ 의 끄덕임이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의 저변에는 개인적 성격, 환경 등의 영향이 있다고 한다. 과음 후에 얌전히 수면상황에 돌입하는 경우도 있고, 폭력적이고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문제되는 경우도 있는 것은 이런 개인적 특성의 차이에 기인할 것이다.

물론 적정량의 음주가 주는 긍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친구 및 가족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기분, 당뇨병이나 심장병 등에 예방효과 가 있다는 연구, 소량의 규칙적 와인 섭취가 오히려 치매에 예방효과를 보이거나 금주자의 경우 오히려 적정 음주자보다 치매위험이 높았다는 연구 등은 무작정 술이 해롭다고 주장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백번 양보해서 술이 아무리 건강에 좋다 하더라도 과음 후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나만 좋자고 하는 이기심의 극치인 것이고, 다음날 자신이 느끼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고려하다면 ‘절대적으로 좋은 것’ 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음주 후 누구나 평소와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할 수는 있지만,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혹은 다른 내용이라도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행 등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모든 보약과 음식,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술 역시 과유 불급이다. 심신미약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하더라도 일하고 있는 직장인에 대한 폭행, 나를 치료해주는 이에 대한 폭력, 주변인에 대한 성적 희롱은, 용감한 행동으로 미화될 수 없다. 폭행, 폭언죄에 더해 가중처벌되어야 할 사항이다.

감히 말해본다. 기억을 잃을 정도로 많이 마실 수 있는 것이 주량이 아니고, 견딜 수 있고 실수하지 않을 만큼 마실수 있는 양이 주량이다. 술은 뇌를 용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단지 뇌를 잡고 있는 고삐를 놓을 뿐이다. 실수가 반복된다면 인생에서 술이란 단어를 지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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