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문화원이라는 단체의 회원들과 우연찮게 동석을 하게 되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는데, 필자는 처음부터 그의 무례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면의 사람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쉴 새 없이 떠드는 그의 입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개 말이 많은 사람들의 가벼움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가리거나, 타인을 속이기 위한 것임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리라. “난 십년에 한 번씩 개명할 생각이야. 얼마나 멋지겠어?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면,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지.” 담배를 물면서 50대 초반의 그가 말했다. 그의 목에는 화려한 목걸이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80년대 우리 사회에서, 악의 축으로 손꼽히던 고금리 사채업자들이 즐겨 들던, 까만 손가방을 옆구리에 낀 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다른 회원이 “이상한 이름도 아닌데, 번거롭게 왜 바꾸나”하고 묻자, 그는 “번거로울 것 하나도 없고, 이름을 십년에 한번 정도 바꾸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뭔가 불안정해보였고 믿음이 가지 않았다. 술자리였던 터라 술이 몇 순배 돌자 다들 불콰해진 얼굴로 언성들이 조금씩 높아져 가고 있었다. 어서 자리를 끝내고 싶던 차에, 그가 느닷없이 한 여성과 필자를 엮어서 불온한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항의를 했더니, 다짜고짜 폭언과 협박을 남기고 먼저 나가 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런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름을 자주 바꿔야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대학마다 평생교육원이나 최고경영자과정 등을 개설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유명대학의 경우에는, 그 과정을 수료한 이들끼리 유명대학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자긍심이 대단한 경우를 많이 본다.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나 문화원을 표방한 친목단체들도 사회에 이롭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일주일에 한번 개설되는 강의시간에도 제대로 참석하는 이는 찾아보기 드물다. 그들은 입학식과 졸업식도 어지간한 대학의 학위 수여식보다 거창하게 치루지만, 과연 그들이 ‘무엇’을 학습하고 이 사회에 건전한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데는 의구심이 든다. 그들에게는 1교시(강사들의 강의를 듣는 시간)보다 2교시(식사자리, 술자리)가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1교시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도 2교시에는 꽤 많이 참석하니 말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남는 건 행사사진과 명함밖에 없더라.”라고 귀띔한다. 각계각층의 지도층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서, 그들의 친목을 다지겠다는데 이를 탓할 수는 없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도, 정작 수업에는 관심도 없고, 그들끼리 고급 술집이나 전전하면서, 허세를 부리는 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정신건강에는, 미세먼지보다 더 해로운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시각이다.
아카데미는 ‘나눔의 산실’이어야 한다. 온 국민이 행복을 나눠가질 수 있는 공간에서, 이를 나눌 수 있을만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모여야 한다. 그들의 지혜를 모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지역사회의 발전, 나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모임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