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펫 구경하고 야시장서 주스 한 잔…위구르족 일상을 즐기다
카펫 구경하고 야시장서 주스 한 잔…위구르족 일상을 즐기다
  • 박윤수
  • 승인 2018.09.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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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亞 서쪽 인도·러 연방 교역 중계지
위구르족 본거지로 방직·도자기 발달
옛 정취 느낀 수공예품거리·올드시티
먹거리 많지만 음주 금지된 야시장
가마솥에 양고기 삶은 동물시장 상인
이슬람 성자 아파크호저 가족묘…
척박한 땅에서 아름다움 맛 본 시간

<박윤수의 길따라 세계로> 카라코람 하이웨이 7(끝) 카슈가르

카슈가르는(Kashgar, 疏勒)의 지정학적, 역사적 배경을 보면 중앙아시아 타림 분지 서쪽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서 동서 교통로의 요지로 파미르 고원을 넘기 전에 채비를 하고 거래하는 장소였다. BC 2세기에 한(漢)이 서역과 교역하였을 때 도시국가가 형성되었는데, 한 당시에는 소륵국(疏勒國)이라고 하였다.

7C 당(唐)의 지배를 거쳐 11세기부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향을 받았고, 다시 차가타이칸국·티무르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티무르왕조 몰락 후인 16세기에 카슈가르칸국이 수립되자 수도가 되었다. 청(淸) 때에는 반청독립운동을 일으켰다.

1860년 러·청조약으로 시장이 개방되자 러시아인의 왕래가 많아졌고, 그밖에 인도인·아프가니스탄인 등이 혼거하면서 교역에 종사하였다. 1884년에 카슈가르를 포함한 현 신장(新疆) 지역은 청의 직접지배하에 들어가 신장성이 설치되었고, 이때 카슈가르는 객십갈이도(카슈가르)로 되면서 소륵부(疏勒府)가 설치됐다. 시가지는 카슈가르강 남동안의 한성(漢城)인 수러[疏勒]와 북안의 회성(回城)인 수푸[疏附]로 나뉘는데, 합쳐서 1952년에 카스시가 설치되었다.

인도·러시아 연방의 교역 중계지로서 곡물·목화·생사·과일 및 가축·피혁제품 등이 집산되며, 공업으로는 기계, 방직, 화학, 도자기, 가죽가공 등이 발달하였다. 중·소학교 86개가 있으며, 위구르족이 90%로 한족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라 한다.

올드시티
올드시티 골목에서 바느질 하는 사람.

위구르족의 본거지 카슈가르의 호텔에서 시내버스(1위안)를 타고 이드카모스크로 갔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이드카모스크(에티칼마스지드)는 중국에서 가장 큰 이슬람사원이다. 이드카모스크를 끼고 수공예품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온갖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자기와 카펫 그리고 악기, 온갖 직물들이 눈질을 사로잡는다. 일행들은 저마다 기념품을 한두 개씩 산다. 조그마한 모스크가 조각된 금속으로 만들어진 손거울,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올법한 찻잔과 주전자, 위구르인들의 모자 등 거리 구경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쇼핑을 하게 만드는 마법의 거리다. 모스크 길 건너의 올드 시티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그네들의 선조가 살던 모습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생활 모습이다. 투박하고 조그마한 가게에서 은 공예품을 만들고, 길가 한켠에서는 생활용품을 바느질하고 골목에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거리구경에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시내 중심가로 향했다. 신세계백화점 옆 가까운 먹거리 시장으로 향했다. 서울의 광장시장 먹거리장터 같은 곳에 있는 노점식당을 뷔페처럼 운영하는 곳에서 맥주 한 잔과 입맛에 맞는 식사를 마치고 도심 구경을 하다 숙소로 향했다.

거리구경을 마치고 일단 숙소로 돌아와 인근의 양꼬치집으로 향했다. 위구르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술이 없으며, 사서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했다. 맛집이라고 하는 양꼬치 집에 들어가서 혹시나 하며 주인에게 음주가 가능한지 물으니, 우리를 힐긋 바라보더니 안쪽의 내실로 안내해준다. 술이 가능하다는 말에 맥주 몇 병은 가게에서 사고 호텔 인근에 있는 술을 파는 가게로 가서 맛난 중국의 백주를 사 왔다. 오랜만에 맛있는 양고기와 중국 술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맛난 양꼬치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몇 사람과 함께 야시장 구경을 나섰다.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오후에 들렀던 이드카모스크로 갔다 이드카모스크 앞의 거리가 야시장거리이다. 지하도를 건너 야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안의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야시장에는 공안 반, 놀러 나온 시장 손님 반이다. 온갖 먹거리가 풍성한 이곳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알코올이다. 공개적인 곳에서는 철저히 음주가 제한된다. 야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과일 주스도 사 먹고 음식도 맛보며 다니다 보니 벌써 12시이다. 시장도 이젠 파장인 듯 하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카쉬가르의 밤을 맞이했다.

카쉬가르의 둘째 날 택시 승차 인원에 맞추어 일행을 나누고 첫 번째 방문지로 시 외곽에 있는 동물시장을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위구르 청년 기사에게 호텔에서 적어온 서툰 위구르 말로 동호바자르를 가자고 하니 알았다고 했는데, 20여 분을 달려 시내에 있는 그랜드바자르에 내려주고 휑하니 가버린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곳이 아니어서 길 가던 젊은이들에게 물어보지만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일단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는 “바자르”라고 말한 뒤, “음메에~”하고 양 울음소리를 흉내 내니 알았다는 표정으로 출발한다. 차를 시외곽으로 몰아 30여분 간다. 불안 불안한 생각으로 마음 졸이며 차장 밖을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넓은 광장에 짐승들이 보인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몇천 평이 됨직한 넓은 공터로 들어가니 입구에는 양고기 음식점이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불을 지피고 있다.
 

동물시장양고기식당
동물시장 양고기 식당. 가마솥에 양고기를 삶고 있다.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양케밥(1,500원)을 사먹기도 하고 가마솥에서 건져주는 삶은 양고기도 먹었다. 기대했던 낙타매매를 볼 수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시장 구경을 마치고 다시 시내로 향했다. 시내에 있는 아파크호저의 가족묘인 향비묘를 들러 본다. 이슬람형식의 타일을 붙인 건물로 내부에는 가족들의 묘가 70여기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인 타지마할에 견주면 작은 규모이지만, 이 척박한 땅에 아름다운 건물의 가족묘는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키게 한다.
 

아파크호저가족묘
신장 이슬람의 성자 아파크 호저의 가족묘.

향비묘를 나와 그랜드바자르로 갔다. 귀국해서 지인들에게 나눠줄 낙타 털로 만든 양말을 사기 위해서 시장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찾았으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어서인지 관광객들이 찾을만한 물건은 없는 듯했다. 어제 들렀던 이드카모스크 뒤 수공예품거리로 가서 낙타 털 양말을 살 수 있었다.

카쉬가르의 2박 3일은 조금은 아쉬운 시간들이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 귀국길에 올라야 할 때가 왔다.

박윤수 ㆍ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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