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만 안전한 원칙
불편하지만 안전한 원칙
  • 승인 2018.10.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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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
대구시 의사회 부회장
계명대 동산의료원 교수
누구나 불편함은 싫어하지만, 일상에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이 불편함은 과학, 정치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불편함의 해소를 위해 노력하게 하고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기에 중요하다.

먼 옛날부터 인간은 ‘내가 하기 귀찮은 일들’을 기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 할수 있는 편리한 미래 세계를 꿈꿔왔다. 이 꿈의 많은 부분은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우리를 열광시켰고 실현되고 있다. 사람의 노동에 의존했던 개인간의 연락이 유선전화에 의해 가능해졌고, ‘삐삐’라는 도구가 개발되더니, 이동전화를 거쳐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통신은 물론, 검색 및 금융, 쇼핑 등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운동화의 끈이 자동으로 죄어지고, 아침에 기기에게 날씨를 물어 외출준비를 하고, 자율주행차에게 운전을 시켜 출근하고, 회사에서집안의 가전제품을 작동시키고, 인천공항에서는 로봇이 청소와 안내를 하고 있다. 정말 편리한 스마트 세상이다.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유지시키는 안전함의 원칙이 있다. 어떤 스마트 환경에서도 개인정보는 함부로 유출되지 않고 보호되어야 하고,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자동화기기는 안전성이 확인된 후 시장에 나온다. 의약품은 수년간의, 복잡한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보한 후에야 승인되고 처방될 수 있다.편리함과 안전함은 여러 상황에서 대부분 공존하며 한가지가 절대적이지는 않다. 따라서 우리는 살면서 한쪽을 일부 포기하고 다른 쪽을 선택한다. 신용카드 탑재가 불가능하여 불편함에도 외부 해킹이나 바이러스 등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기에 아이폰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고, 대다수가 이용하므로 안전하지 않겠나 라고 믿으며 편리함을 추구하여 안드로이드폰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의 영역에 들어서면 편리함과 안전함을 적당히 공존시키는 경우는 위험해진다.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선택한 방법에서 안전하지 않은 면이 보인다면 그 방법은 재고 혹은 폐지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병원에 가는 절차가 불편하니 집에서 의사와 화상통화를 하며 진단받고 약을 처방 받기를 원한다. 또 어깨가 아파 한의원에 갔다가 영상장비가 있는 병원을 방문하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 한의원에서도 최신의 영상장비를 도입하기를 원한다. 편리할 수 있지만, 의료라는 전문 영역임을 고려한다면 참으로 단순하고 안전하지 않은 발상이다.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절차가 너무 복잡하기에 미청구 보험금이 최대 20%에 이른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실손보험은 우리나라 성인의 80%가 가입되어 있음에도 대부분 소액이기에 청구를 위해 설계사를 통하거나, 팩스, 우편 등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한 절차로 인해 포기해 버린다는 얘기이다. 일리가 있다. 이에 수년전부터 청구 간소화에 대한 보험사의 궁리가 이어져왔고, 불편함을 인식하고 해소하기 위한 바람직한 노력이다. 그러나 보고서 말미에 각 병원이 피보험자를 대리하여 전산으로 보험금을 청구하고 환급받는 방법, 즉 의료기관의 청구대행의무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건강보험은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에 이 해결책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손의료보험의 경우 민간 보험사가 관계하므로 성격이 다르다.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진료기록을 열람하거나 사본을 내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의료법 조항을 생각하면, 성인 80%가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의 주체인 민간기업에게 의료기관이 개인의료기록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국내의 일부 대형병원에서 시행 중인, 환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복잡한 과정을 줄이고 쉽게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방법과도 성격이 다르다.

보험금 지급 거절, 혹은 과소 지급과 같은 보험사의 부당행위에 대한 수많은 보험민원이 발생되는데, 의료기관이 청구를 하고 발생하는 보험사의 부당행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보험금 청구를 위한 시설비용, 인건비 등이 전적으로 의료기관에게 전가된다면, 이로 인한 경영악화의 방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않는 것 같다. 업무를 대행해주면서 대행료를 받기는커녕, 보험사가 지급을 거절하는 보험금, 시설투자비, 인건비 등을 의무화라는 명목 하에 대행업체, 즉 의료기관이 떠안도록 하는 정책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가능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또한 민간보험사는 지급 거절 등의 명분을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취득하려 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기에 민간보험사가 국민건강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의료급여 미지급액이 7400여억원으로 사상최대일 것이라는 통계를 앞에 두고, 국민건강보험의 청구조차도 힘겨워 하는 일선진료현장을 되짚어갈 의향은 없는지 묻고 싶다. 의사들을 향해 ‘너희만 참으면 돼’라고 하며 쏟아붓는 수천 개의 정책을 히포크라테스라는 수식어 하나만으로 견디기에는 의료기관이 느끼는 심적, 육체적, 경제적 불편함이 너무 심각하다.

환자인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참으로 편리하지만 안전하지 않고, 의료기관에게도 불편하면서 안전하지 않은 해결책을 찾은 것 같다. 다른 건강한 해결책을 고민하여야 할 때다. 불편하지만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면 눈을 질끈 감고 감내해야할 것이고, 안전함이라는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차근차근 개선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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