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시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때
불신의 시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때
  • 승인 2018.10.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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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원장님_증명
박준우 대구시의사회 기획이사, 든든한병원 원장
“선상님, 요고 내가 시골에서 열심히 농사 지은 것이니께 꼭 드셔보셔. 울 아들 수술 잘 해줘서 고마우이.”

80살 가까운 노모가 진료실에 들어와서 꾸벅 인사를 하면서 내게 건넨 말씀이시다. 손자뻘 되는 나에게 연신 고맙다면서 손을 꼭 잡으시면서 검은 봉지에 알이 꽤 굵고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대추를 한가득 담아 건네신다.

의사라는 직업은 매우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 중 하나이지만 가끔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때에는 그간의 힘든 일들이 싹 씻겨 나가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 좋은 직업이다. 처음에 레지던트 할 때에는 실수도 많이 했고,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라 환자들에게도 무뚝뚝하게 잘 해드리지 못한 때가 있었다. 궁금한 게 많은 환자들이 매번 같은 질문을 하면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러면서 나도 의사로서 성장을 했고 이젠 꽤 큰 병원의 대표원장을 맡고 있으며,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들을 진료하고 수술도 하고 있다.

모든 의사들이 다 나름대로 힘든 일들을 하고 있지만 특히 외과계 의사들은 직접 환자의 몸에 칼을 대야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 남에게 중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흉기와도 같은 칼을 들고도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직업은 의사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가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내 몸에 칼을 대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작금은 낭만의 시대라 했던가’

난 요즘 언론에 나오는 기사를 보고 있자면 ‘작금은 불신의 시대’ 라고 하고 싶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나조차도 그런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불신이 만연해 있는 사회 풍조에, 과연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통렬한 반성이 사회 전체에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몇몇의 사람들로 인해서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들이 유치원 선생님을 믿지 못하고, 수제쿠키라고 비싼 돈을 주고 사먹으면서 이게 진짜 수제쿠키가 맞는지 의심을 하고, 음식점에서도 원산지 표시가 정말 국내산인지 의심을 하며, 수술실에서도 과연 내가 진료한 의사가 직접 수술을 하는 것인지 의심을 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는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라 본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고 의사들의 자질과도 직접 상관이 있는 일이다. 난 아직까지 환자의 치료에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맡겨본 적도 맡길 생각을 한 적조차도 없지만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 몇 명 때문에 이 나라에서 열심히 환자 진료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많은 선량한 의사들이 함께 매도되는 현실에 참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문제로 요즘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나처럼 대리수술과 무관한 많은 의사들은 수술실에 CCTV 가 있건 말건 상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항상 누군가의 시선이 지켜보고 있다면, 그 누구도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극도의 집중력과 주의력을 가지고 수술에만 집중해야 할 공간에, 무균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는 공간에 CCTV 가 있다면 과연 그게 환자를 위한 길일까? 물론 환자의 알 권리는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을 맡기고 수술을 받는 의사에게 당신이 정말 내 몸에 수술을 직접하는 것인지 다른 이가 수술을 하는 것인지 이런 원초적인 문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라면 굳이 그 사람에게 수술을 맡길 이유가 있는 것인가?

또 하나, 청와대나 국방부도 해킹을 당하는 요즘 과연 수술실에서 환자의 은밀한 부분까지 모두 녹화가 되는 동영상이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자료를 담당하는 사람이 아무리 보안을 신경쓰더라도 그런 자료를 수년간 보관을 해야하는 의무가 있고 외부로의 유출을 다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충분한 협의 없이 대리수술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시행을 했다가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을 것으로 보여진다. 의협에서도 이런 대리수술을 시행하는 의사들에 대한 강력한 자정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환자들에게 잃은 신뢰를 만회하는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무이, 걱정말고 수술받고 얼른 나아서 다시 예전처럼 지내도록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말 한마디만으로도 힘을 얻는 시대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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