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헝가리 도예가 이바 카다시...마음에 아로새긴 한국 정서, 손끝으로 녹여내다
[서영옥이 만난 작가]헝가리 도예가 이바 카다시...마음에 아로새긴 한국 정서, 손끝으로 녹여내다
  • 서영옥
  • 승인 2018.10.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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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국제 도자기 레지던시 참가
6개월간 머무르며 작업·전시
모형·다기 등 다양한 작업물
흙빛 드러나는 거친 질감 특징
한옥의 처마·기와에서 착안
곡선 강조한 작품 눈에 띄어
현지 문화와 호흡 빛난 순간
이바 카다시
이바 카다시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영옥 제공

 

서영옥이 만난 작가-헝가리 도예가 이바 카다시


흙을 빚어 구운 기물을 도자기(陶磁器)라고 한다. 도자기는 토기에서 자기로 발전하였다. 인간이 발휘한 지혜의 소산이다. 한반도에서는 그 출발점을 약 1만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잡는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자기의 위상은 공예품 이상이다. 각 시대의 정치와 경제, 당대인들의 미의식 등, 총체적인 배경이 함축되어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일상 용기를 넘어 신소재(뉴세라믹)로 그 용도가 확장되고 있다. 치과재료에서부터 인공위성의 부품으로까지 응용범위는 점점 더 확대되는 추세다. 도자기야말로 문화산업의 중심임을 방증한다. 도자기를 통한 국제 문화예술교류도 활발하다. 청송군의 행보가 그렇다.

맑은 하늘에 해와 비구름이 교차되던 10월 첫날, 청송군으로 갔다. ‘청송 국제 도자기 레지던시’에 참여중인 도예가들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외국인의 손으로 빚은 청송도석 도자기가 내심 궁금했다. ‘청송 국제 도자기 레지던시’는 2014년부터 시작되었다. 참여 작가는 모두 세 사람, 헝가리에서 온 이바 카다시(Eva Kadsi)와 이스튜 세베시(Istyu Sebesi), 그리고 홍콩에서 온 다니엘(Chau Yushing(Daniel))이다. 이들은 올해 5월부터 11월까지 청송 장난끼공화국에서 도자기를 빚었다.

국적과 나이, 성별이 각각 다른 이들은 6개월간 청송의 운기를 마시며 청송의 도석(陶石)으로 작업했다. 청송백자의 차별화는 다른 지역의 도자기와는 달리 청송에서만 채굴되는 ‘도석’으로 빚는다는 점이다. 도석은 미립의 석영과 견운모를 주성분으로 하는 백색의 암석이다. 도석이 주원료인 청송백자의 성형은 옹기제작기법과도 유사하다. 민요자기의 특징을 유지하는 청송백자는 고유한 지방색에 방점을 찍는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청송백자에 대한 자부심은 2007년부터 청송백자 복원사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청송 도자기의 맥을 잇고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세계로 뻗어가길 바라며 기획된 레지던시인 만큼 참여 작가들의 어깨도 가볍지만은 않다. 언어와 식성, 정서 등 다른 문화권의 작가들이 타국에서 극복할 난관도 예상된다. 다행히 염려가 무색할 만큼 표정들이 모두 밝다. 흙의 본성처럼 유연한 품성으로 주최 측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훈훈한 삶의 풍경을 만들던 세 작가의 작품은 개성이 뚜렷했다. 그 중 이바 카다시(Eva Kadsi 이하 에바)는 도자기에 한국의 정서를 녹여내고 있었다.

1953년생인 에바는 1979년 헝가리 예술 디자인 대학에서 도예 디자인을 전공한 도예가다. 작년(2017년)까지 헝가리에서 도자기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하고 헝가리 예술가협회와 도예가협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그녀는 퇴직과 동시에 청송에 오게된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이력만 보아도 베테랑인 에바의 흙 다루는 솜씨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손이었다. 흙을 만진 긴 세월의 흔적이 손마디에 깊게 배어있었다. 평생 흙을 벗삼은 도공의 손이 훈장처럼 장인정신의 귀감을 일깨운다.

경의를 표하며 그녀의 굴곡진 손을 두 손으로 감쌌더니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했다. 12시간이 넘는 비행과 여러 행선지를 경유하여 청송에 도착한 에바가 다시 돌아갈 길도 왔던 길 그대로다. 65세 노장(Veteran)의 비장한 열정이 시발점이다. 에바는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의 전통문화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녀가 청송에서 빚은 도자기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였다. 청송백자 전시관 내 다도실에서 전시되고 있는(10월 2일~21일) 에바의 도자기 ‘message for the future(미래의 메시지)’는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받은 영감이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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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 카다시 작품.

에바의 도자기는 시각적 유희와 실용성을 고루 갖추었다. 단순한 모방과는 다른 차원의 진지한 고민도 엿보인다. 도자공예는 대개 실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쓰임을 도모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피터 불코스(Peter Voulkos)등에 의해 꾸준히 발전해온 도자조각(陶瓷彫刻 Ceramic Sculptures)은 순수미술로서의 도자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현대의 도자공예가 용도 중심에서 순수미술로 전향하는 추세임을 반증한다. 이바의 작품은 도자공예와 순수미술, 응용미술과 순수미술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든다.

한때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중국 도자기가 유럽인들에게는 큰 인기였다. 비싼 가격 탓에 중국 도자기를 쉽게 소유할 수 없었던 이들은 자국의 도자기 만들기에 나섰다. 헤랜드(Herend)가 그 중 하나이며 성공한 사례로 거론된다. 헤렌드의 생존점은 유약의 빛남 속에 흐르는 단아한 격조와 여성스러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헤렌드의 원산지는 바로 에바의 고국 헝가리이다. 접시와 찻잔처럼 일상 용기라는 보편적 가치에서는 에바의 도자기와 헤런드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귀족적인 헤랜드와 소박한 이바의 도자기는 제작방식이 다르다. 선물상자나 꽃처럼 심상을 대변한 모형에서부터 다도용(茶道用)으로 제작된 이바의 도자기는 헤렌드와는 달리 흙빛을 자연스럽게 노출시켰다. 다소 거친 표면질감에서는 구수한 숭늉맛 같은 질박함이 우러난다. 음식 담을 공간이나 넉넉한 크기도 푸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한 몫을 한다. 여성 특유의 심미안과 한국의 정취를 공감한 섬세한 감각이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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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 카다시 작품.

이바가 청송에서 빚은 도자기에서 일관성 있게 추구한 것은 단아한 곡선의 미이다. 한옥의 처마와 기와에서 착안한 곡선은 근교의 고택과 박물관, 청송의 고즈넉한 풍경 속을 거닐며 그 정서를 호흡한 결과이다. 그것은 대체로 간결하고 조촐하며 아첨이 없다. 한국의 정서와 문화습득에 기울인 이바의 노력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고유섭은 한국의 미를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 하였다. 이경성은 ‘어리석고 미숙한 것 같은 초탈미’라고 한 바 있다. 그 정점에 가 닿진 못하더라도 에바의 소소한 실천은 문화적 간극을 좁히려는 기획의 가치를 드높인다.

11월이면 그녀는 한국을 떠나 다시 헝가리로 돌아갈 것이다. 6개월간 청송에서의 경험이 이바에게 고스란히 체화되길 바란다면 무리일 것이다. 평생 도자기를 빚고 가르쳤던 인생여정에 비하면 6개월은 여삼추다. 타국의 문화를 온전히 습득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과 성장은 지역과 국가의 성과로 이어진다. 나아가 나라 간에 풍성한 교류의 발화점이 된다면 공과 사 양 측면에 큰 소득이 될 것이다. 이바가 청송에서 빚은 도자기에 ‘message for the future(미래의 메시지)’란 제목을 단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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