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하는 말을 안다는 것(知言)
남이 하는 말을 안다는 것(知言)
  • 승인 2018.10.25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동규(전 중리초등 교장)



“영덕에 송이를 먹으로 가요?”하고 초임교사로 처음 만난 제자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참 반가웠다. 나의 초등학교 초임지는 영덕 창수 인량리이다. 여덟 성씨의 종가들이 자리 잡고 있는 속칭 나라골이다. 그곳에서 5년 동안 교직생활을 유익하게 보냈다. 처음으로 37명의 아이들을 맡아서 2년 동안 가르쳤다.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었다.

사정상 송이 먹으로 가는데 불참을 알렸다. 그런데 20여명의 아이들이 모인다는데 저녁에도 전화하는 제자들이 한 명도 없었다. 그 후론 연락이 없었다.

‘안 가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내심 허전하였다. 입만 벙긋하면 나의 친구들에게도 제자들을 자랑하였던 터였다.

현직에 있을 때, 나는 정년퇴직하면 ‘와룡선생 상경기’처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제자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시골학교에서 와룡선생은 37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친다. 서울에 있는 여러 제자들을 찾아 만나면서 희비가 교차된 경험을 한다. 출세한 제자들은 얼굴을 내밀지 않고 바쁘다는 핑계거리로 후배에게 스승의 대접을 미룬다. 그들에게는 분명 불청객이 된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제자들에게서는 인간미 넘치는 만남이 이루어진다. 사람다운 대접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서울역에서 와룡선생은 많은 제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를 타고 떠난다. 제자들은 와룡선생을 환송하지만…….’

그렇게 와룡선생의 상경은 막을 내린다. 마지막 장면이 낯설지 않다.

제자 공손추가 맹자에게 ‘하위지언(何謂知言)’하고 여쭈었다. ‘남이 하는 말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라는 뜻이다.

맹자는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것에 의해 가려져 있음을 안다. 음탕한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것에 빠져 있음을 안다. 사특한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이간하는 데를 안다. 회피하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궁지에 빠져 있음을 안다. 이 네 가지의 말들은 마음에서 생긴다.’고 대답하였다.

피사, 음사(淫辭), 사사(邪辭), 둔사(遁辭)의 네 가지 말을 들으면 폐(蔽), 함(陷), 이(離), 궁(窮)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언(知言)이다.

맹자는 이 네 가지의 말이 정치를 해친다고 했다. 이러한 말로 정치를 했다고 하면 일을 전부 망친다고 하였다. 사회생활에도 적용되는 말이리라.

휴대폰에 제자들의 입력된 전화번호를 찾아 ‘시간 있으면 전화 한 번 해 달라’고 문자를 넣었다. 나의 호기심의 발로에서였다. 어떤 말이 나올까를 상상하면서 전화를 기다렸다. 몇몇 제자들과 통화가 시작되었다.

‘와룡선생 상경기’는 1962년에 방영된 영화이다. 나의 제자들은 이 시기에 태어났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의 인심이 순박한 마을에서 자랐다. 아이들은 순진무구했다. 꽃피는 봄날이면 교탁위엔 꽃병이 놓여졌다. 산딸기 익는 계절이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김없이 나의 하숙집 툇마루에 산딸기 한 도시락을 갖다 놓았었다.

‘책가방 없는 날’이면 학교 앞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민물 털게를 잡기도 했고, 돌아올 때는 양동이에 은어를 가득 잡아오곤 하였었다. 또 나옹대사의 탄생이야기가 있는 까치소에 가서 공부도 하고, 그가 창건한 장육사도 다녀왔다.

가정방문하는 날,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감나무 가지를 꺾어 부끄러워 뒤쪽으로 감추고 생긋 웃다가 감나무 가지를 내밀던 아이들도 있었다.

교실 갈탄난로의 불쏘시개를 하기 위하여 뒷산에 올라 솔방울을 따다가 미끄러져 다리를 다쳐도, 손가락이 긁혀도 절대로 울지 않던 아이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다.

공손추가 ‘백이와 이윤은 사람이 어떻습니까?’하고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는 ‘백이는 이상적인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았다. 이윤은 어떤 군주라도 섬겼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공자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머물 만하면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난 인물이었다. 이 세상에 공자같은 분은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도 ‘싫다. 좋다. 그저 그렇다.’의 세 부류일 것이다. 어쩌면 와룡선생은 공자를 닮은 분일 런지도 모른다. 그 때 그 모습이 그립다. ‘남이 하는 말을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인가 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