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사(漁父詞)와 낭중지추(囊中之錐)
어부사(漁父詞)와 낭중지추(囊中之錐)
  • 승인 2018.11.15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병진(한국소비자원 소송지원변호사)



각종 기관의 내부고발, 미투 운동, 전직 대통령의 처벌, 전직 고위 법관의 구속과 대법원장에 대한 형사처벌 자체가 거론된다는 점에서 우리사회가 과거보다는 훨씬 더 깨끗해지고 전반적으로 발전해나가는 느낌이 든다.

대통령이 처벌되고, 고위 법관이 구속되었으므로 사회가 더 깨끗해졌다는 것이 아니고, 위법하지만 관행적으로 허용되었고 국민 누구도 처벌의 대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영역에 대하여도 ‘위법한 관행으로부터의 단절’이라는 대원칙 아래 어떤 행위이라도 위법인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될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활발한 내부 고발도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중요한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투의 부작용과 같이 내부 고발의 부작용도 상당히 많다.

어느 로스쿨 A 교수가 ‘동료 교수가 성매매를 한 전력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고 수백 명에게 이메일로 전송한 명예훼손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공소 사실 등을 놓고 판단할 때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 된다”고 하여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였고, 해당 사건은 대법원에서도 같은 취지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 이후 A 교수는 교수를 그만두고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책을 출판하였고, ‘그 책에서 다시 문제의 동료 교수가 성매매를 했던 것이 맞다고 주장한 내용’이 나무위키에 기재되어있다.

실제로 명예훼손 내용과 같은 취지로 다시 책을 출간하였다면 종전에 ‘학교 게시판에서 행한 명예훼손’과 별도로 다시 처벌이 가능한지 문제될 수 있다.

한번 처벌받은 명예훼손 내용과 동일한 내용을 출판물에 기재하였다면 당연히 또 다시 처벌할 수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더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① 명예훼손을 당한 입장에서는 종전에 가해자의 명예훼손 행위로 명예가 실추되었다가 어렵게 명예회복 하였는데 이제 또 다시 명예가 실추된 점, ② A 교수는 벌금 500만원의 처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재범을 하였으므로 벌금 500만원이 A 교수에게 재범 억제 효과가 없었던 점, ③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행위는 일반 명예훼손 행위보다 더 높은 형량으로 처벌되는 것이 그 이유다.

A 교수에 대한 나무위키 일부 내용에는 ‘현실판 나만 정상인. 가는 곳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명예를 훼손(?)하여 논란을 일으켜 왔다.

문제는, 정작 A 교수가 폭로한 사실은 개중 어느 것도 입증이 되지 않았고, 결국 그것은 A 교수의 추측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A 교수 본인은 자신은 내부고발을 한 것이고 주위 사람들이 다 진실을 은폐하고 있으며 자신은 그 때문에 희생양이 되어 왔다고 주장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 글을 읽으니 “온 세상이 더러운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술에 취했는데 나 홀로 취하지 않아 이렇게 되었소.”라고 말한 굴원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라”고 말한 어부의 이야기가 나오는 어부사(漁父詞)가 갑자기 생각나고, 어부는 역사상 처음 등장하는 ‘내부고발 부정론자’로 보인다.

정당한 내부고발행위는 당연히 권장되어야 한다.

의미는 다르지만 정당한 내부고발자는 낭중지추가 되어 소속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지만 악취미 내부고발자는 오로지 봉투만 찢을 뿐 봉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봉투속의 깨어진 유리조각과 같다.

그런 A 교수는 이제 변호사가 되어 내부고발자나 기관을 상대로 투쟁하는 개인들을 위한 공익로펌을 만들려고 한다.

자신이 만든 공익로펌을 내부고발할지 그것이 기대되고, 낭중지추인지 아니면 봉투이동 능력이 탁월한 깨어진 유리조각인지 아직은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