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정책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정책의 가벼움?
  • 승인 2018.12.0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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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아이꿈터 아동병원장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수능 날이면 대한민국은 일사불란하다. 관공서를 포함한 기업들은 출근 시간을 늦추고, 듣기 평가시간엔 비행기 이착륙도 금한다. 국민이면 누구나 겪는 수능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마다 수능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유는 ‘공정하고 일관된 수능’이 아닌 ‘복불복 수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마다 ‘불수능(어려운 수능)’ 또는 ‘물수능(쉬운 수능)’으로 난이도 논란이 반복되고 있어, 국민들 사이에서 수능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수능은 현재 우리나라의 왜곡된 교육정책과 제도의 현주소뿐만 아니라 암울한 미래까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교육의 목표는 수능이 아니다. 하지만 ‘입시공화국’이 된 우리나라에선 수능이 최종목표가 되었다. 교육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며 주변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복불복 수능’으로 인해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교육목표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사회에 대한 통찰 없이 단기간의 정책성과를 내기 위해 교육정책을 세웠기 때문이다. 과거 모든 정부가 ‘교육개혁’이란 미명하에 여러 정책과 제도를 제시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제도의 일부를 고치는 것이 최선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빠른 시일 안에 교육목표를 점검하고, 그 방향을 정해야 한다. 교육은 물의 흐름과 유사하다. 물은 빗물이 모여 샘(초등학교)을 이루고, 이것이 계곡(중·고등학교)으로 흐른다. 이렇게 흘러내린 물은 지천을 따라 강물(대학교)에 닿고, 이내 넓은 바다(사회)로 간다. 누군가의 욕심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물의 방향을 잘못 바꾸거나 속도를 엉뚱하게 조절한다면, 물은 처음 가려고 했던 바다에 가지 못하거나 제때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교육정책은 그 목표와 방향성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분석하여 세워야 한다. 또한 일정시기마다 변화된 상황에 맞게 정책과 제도의 수정도 필요하다.

의료도 교육과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의료정책 및 제도는 목표를 잊은 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1977년부터 시작된 저수가 의료보험제도, 2000년 의약분업,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사용 허가시도, 그리고 최근 정점을 찍은 ‘문재인 케어(급진적인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 이하 문케어)’가 그 예이다. 현재의 의료전달체계 붕괴 및 1·2차 병원 몰락, 그리고 의료 환경의 왜곡(수가가 낮은 과의 의사 지원 감소 등)을 부추기는 저수가 의료보험제도와 의료비 상승을 가속화하여 의료재정을 악화시키는 의약분업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또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사용을 허가하는 정책은 과학화에 실패한 한의학을 유지시킴으로써 이원화된 의료체계로 국민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키는 것도 모자라 국민건강권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이다. 게다가 ‘문케어’는 검사비가 싸지면 환자의 의료요구가 폭팔적으로 늘어나는 의료의 특수성과 미래(저출산 및 고령화 사회)에 발생할 의료비 상승 및 의료재정 확보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환자 편익을 위해 의료재정파탄을 촉진하여 최악의 의료 환경(아파도 의료혜택을 제때에 받을 수 없음)을 하루빨리 맞이하자는 정책인 것이다.

의료의 목표는 환자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의료정책 및 제도는 그 목표에서 멀어져 왔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다가올 미래의 의료 환경을 상상해 봤으면 한다. 목표를 잊어버린 채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만든 의료정책과 제도는 교육목표를 잊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는 수능처럼 매년 국민을 혼란에 빠지게 할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단 한 번이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책의 무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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