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도예가 김판준, 흙 빚고 불 지피기 40여년…실용성 아닌 장식성 추구
[서영옥이 만난 작가]도예가 김판준, 흙 빚고 불 지피기 40여년…실용성 아닌 장식성 추구
  • 서영옥
  • 승인 2018.12.03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계수단으로의 전락 우려
실용도자기는 후배 몫으로
달항아리 등 원형작품 다수
조선백자 보는 듯한 자연미
개인전 16회·단체전 350회
 

서영옥이 만난 작가-도예가 김판준 

김판준의 작품세계를 글로 풀어서 그의 개인전에 부친 적이 있다.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습관처럼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여운도 남는다. 김판준의 도예실을 다시 찾은 이유이다.

걷기 좋은 날씨였다. 캠퍼스를 걸었다.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는 사계절이 고루 아름다운 곳이다. 가을엔 특히 단풍이 압권이다. 잘 물든 단풍은 사유가 깊은 사람처럼 빛이 깊다. 아름다움이 깊은 것은 그 슬픔 또한 깊다고 하였던가. 비장하게 떨어지는 낙엽의 이별이 숭고하다. 탐욕을 내려놓는 눈부신 순간이다. 빛깔이 고운 낙엽 몇 장을 주워서 책갈피에 넣는다. 흠뻑 가을 정취에 취해서 걷다보니 어느새 김판준의 도예실이다.

김판준의 어릴 적 꿈은 도예가였다. 그가 요업고등학교 학생일 때부터 준비해온 꿈이다. 녹록하지는 않았지만 꿈은 이루어졌다. 지금도 흙을 만질 때 가장 행복하다는 도예가 김판준은 오늘도 계명대학교 도자기 가마에 불을 지피고 온도를 높인다. 김판준에게는 우직학고 성실한 도예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6회의 개인전과 350여회의 단체전 경력만 보더라도 40여년 이어온 그의 작가생활은 가늠된다. 현재는 한국미술협회, 한국공예학회, 대구도예가회, 계명도예가회, 대구미술협회 상임이사 등 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식지 않은 작업열정 또한 꾸준하다.

 

김판준 도자기1
김판준 작.

김판준의 작업장은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비너스광장 곁이다. 도예실 언저리에 촘촘히 내려앉은 노란 은행잎처럼 김판준의 환한 반김은 한결같다. 흙처럼 유연하고 정직한 인품도 예전 그대로다. 사소한 언행에서 그 사람을 본다. 그가 걸어온 길도 보인다. 모나지 않은 김판준의 인격형성에는 순수한 학생들과의 지속적인 만남과 정갈한 교정의 기운이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평생 흙과 벗한 삶도 한 몫을 했지 싶다. 작가의 삶을 재단할 자격은 없으나 그의 언행을 보면 이해하게 된다. 작품과 성품이 두루 익어가는 도예가 김판준은 그날도 학교 도예실에서 우리(후배 도예가)에게 두루 유익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물레가 돌아간다. 도는 물레는 동그란 그릇을 만들기에 용이하다. 물레가 둥글게 돈다고 하여 모두 동그란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예가의 손이 관건이다. 어디 손 만이겠는가. 작업환경과 지극한 정성에 더한 고도의 집중력도 완성작을 결정짓는 주요소이다. 손과 주변요소가 원만하게 합을 이룰 때 온전한(도예가가 원하는) 도자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유념할 것은 더 있다. 수분이 남은 상태의 성형은 그늘에서 잘 말려야 한다. 구울 때(소성)도 온도와 시간 조절은 필수다. 미세한 붓으로 며칠을 공들여 채색하고 투각하며 소성 후엔 형태가 틀어질 새라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김판준 도자기
김판준 작.

도자기는 도기, 토기, 자기, 옹기 등을 모두 지칭하는 넓은 의미이다. 토기와 도기의 용어가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고 혼용되는 것이 한국 학계의 실정이다. 토기와 도기, 자기는 흙으로 모양을 만든 뒤 불에 굽는다. 대체로 태토와 유약의 굳기 차이로 구분되는 도자기는 굽는 온도가 각각 다르다. 기본 재료인 흙의 종류와 굽는 온도, 유약 등에서도 차이가 난다. 토기(土器, clay ware)가 찰흙을 태토로 사용하여 섭씨 600~800도로 노천에서 구운 적갈색 용기이라면 도기(陶器, earthen ware)는 토기보다는 높은 온도인 섭씨 800~1000도에서 굽는다. 태토 속에 포함된 장석이 높은 온도에 녹아 태토 사이로 흘러드는 특징이 있는 도기는 밀폐된 공간에서 구워 표면이 매우 단단하다.

저녁에 표면 처리를 마친 성형이 아침나절에 일그러지거나, 가마 안의 높은 온도를 견디지 못한 도자기에 예기치 못한 금이 가지 않도록 소소한 것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시간 단축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 절차 하나하나가 까다롭고 예민하다. 섬세한 관찰이 필수다. 이를테면 ‘흙 반죽 → 물레차기 → 건조 → 굽깎기 → 투각(또는 그림) → 건조 → 초벌구이 → 유약처리 → 스프레이시유 → 삼벌구이 → 완성’이 그렇다. 아주 느리지만 쉼 없이 제 모습을 갖추어가는 협곡처럼 도자기의 탄생은 누적된 ‘조금들’이 일궈낸 결과물인 것이다. 다양한 연구와 거듭된 시행착오로 체득한 노하우가 해결책이다. 김판준은 그 정점에서 스스로 터득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김판준
김판준 작.

상기하였듯이 도자기는 그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난이 반드시 성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치 있는 일들은 약속처럼 고난을 거치곤 한다. 숙련된 도예가로 성장하기위해 김판준이 거친 고비들이 그랬다. 김판준은 그 과정을 ‘흙 속에 빠져 고독하게 헤쳐 나온 길’이었다고 회상한다. 날밤을 새어가며 낱낱이 기록한 실험데이터야말로 김판준의 차별화된 도자기의 탄생비결이다. 긴 세월을 지나온 빛바랜 노트에는 노고를 짐작할만한 기록들이 빼곡하다. 이론적인 배경에서부터 수분과 흙의 분량 및 유약의 농도를 기록한 수치들은 김판준이 남긴 귀한 발자취다.

생활도예와 산업도예, 공방도예와 전승공예 등, 각 분야가 균형을 이루어 시회에 필요한 도예가를 양성하는 것도 김판준에게 남겨진 과제인 듯하다. 김판준의 도자기가 품고 있는 상생의 기운은 그의 몸에 배인 나눔의 철학과도 맞닿는다. 그의 도자기가 안정적이면서도 여유가 만만한 이유일 것이다. 겸손하면서도 위풍당당하며 자신감도 넘친다. 뚝심과 지구력에 더한 견고한 장인정신이 밑바탕이다. 이러한 김판준의 도자기는 토기와 도기 그리고 자기 등 다양하다. 맵시는 번잡하지 않다. 한국인의 미의식에 바탕을 둔 달항아리를 비롯하여 삼족 항아리와 둥근 접시 등, 그의 도자기는 무한관용을 보여주는 듯한 원형이 주를 이룬다.

달항아리를 조선 백자의 정수로 꼽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친화적인 심성이 어렸기 때문이다. 김판준의 도자기에서도 유사한 미의식이 포착된다. 상호텍스트성을 유지하는 김판준의 도자기는 원만구족(圓滿具足)한 형태미가 돋보인다. 안분자족(安分自足)함을 추구한 그의 미의식은 인공미보다는 자연미를 추구한다. 그것이 대체로 묵직하고 웅장하다. 원형의 지름이 95× 95㎝인 접시가 가마에 들어가기 전에는 약 120× 120㎝는 족히 넘었을 것이다. 형태를 지탱해줄 두께를 감안한다면 적지 않은 무게감이 짐작된다. 평생 흙으로 유희했지만 이때야 말로 김판준이 흙과 싸워 이겨야 하는 순간이다.

김판준의 도자기는 실용성을 겨냥하지 않는다. 그간 장식적인 도자기만을 고집한 이유에서 김판준의 성정은 여실히 드러난다. 실용적인 도자기는 생계수단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실용도자기를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둔 이유이다. 향후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자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저 손 가는대로 만드는 것” 그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다. 삶의 번다한 참견에 침묵하고 오롯이 흙에만 집중한 김판준의 막사발을 감상할 날이 기다려진다.

 

 

 

△김판준= 개인전 16회, 초대전 350여회 개최. 대한민국 미술대전 공예분야 심사위원, 대구 공예대전 초대작가,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운영위원, 심사위원 역임,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 개천미술대전, 정수미술대전, 성산미술대전, 코리아아트 페스타 운영위원, 신라미술대전 대상, 경상북도미술대전 금상, 대구공예대전 우수상 등.
 

 

 

 

서영옥 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