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킴’의 ‘쇼윈도 스토리’
‘팀 킴’의 ‘쇼윈도 스토리’
  • 승인 2018.12.04 22: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환
부국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컬링 대표팀 ‘팀 킴’의 부당대우 의혹과 관련한 호소문을 접한 필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사태에 중심인물로 지목된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는 1990년대 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더 충격적이었다. 당시 대구남중 레슬링 감독으로 재직 중이던 김 전 부회장은 전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인 하태연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스포츠 기자로 지역의 레슬링 유망주인 하태연을 취재하면서 자연스럽게 김 전 부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김 전부회장은 수년 뒤 경북과학대 체육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 컬링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 1995년 연말쯤으로 기억된다. 밤늦은 시간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김 전 부회장이었다. 그는 대뜸 컬링이란 동계 스포츠 종목을 아느냐고 물었다. 수년 만에 전화로 안부인사를 건넨 그는 부탁을 했다. 당시만 해도 생소한 컬링종목을 할 수 있는 아이스링크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는 지역 유일의 아이스링크장인 대구실내빙상장에서 컬링 시연을 준비하면서 대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필자는 당시 대구실내빙상장 관계자와 친분이 있는 터라 대관을 주선했다.

얼마 후 그는 경북과학대 재학생들과 대구실내빙상장에서 컬링 시연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필자는 처음 접한 컬링종목과 관련한 특집을 당시 재직하고 있던 신문에 게재했다. 지방지로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컬링을 소개한 셈이다. 이후 지역에선 그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컬링종목이 점차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전국동계체육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일선학교에 컬링 팀이 창단됐고, 지난 2006년에는 경북 의성에 컬링전용구장이 건립되면서 의성이 한국컬링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부회장은 컬링 보급은 물론 전용구장 터를 의성군에 기부하는 등 헌신적인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부회장과 한동안 소원했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전만 해도 팀 킴은 필자는 물론 국민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팀 킴의 선전과 감동적인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전 국민적인 인기스타가 됐다. 올림픽 이후에도 팀 킴의 스토리와 김 전부회장 일가는 화제가 됐다.

하지만 올림픽 폐막 후 불과 몇 달여 만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국민들이 본 팀 킴과 김 전 부회장 일가의 이야기가 ‘쇼윈도 스토리’로 드러났다. 이후 팀 킴과 김 전 부회장 일가 간의 상호 반박 성명이 나오면서 진실을 밝혀달라는 성난 국민들의 청와대 청원이 잇따르자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경북도가 합동 특정감사를 지난달 19일부터 실시하고 있다. 관련기관들은 팀 킴의 호소문과 관련한 사안을 철저하게 조사해 법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하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필자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필자가 알고 있는 김 전 부회장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팀 킴의 호소문과 이후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의혹을 접하면서 그동안 김 전 부회장 일가의 컬링 보급과 육성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과 공을 십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과도한 집착이 만든 사례가 아닐까 싶다. 김 전 부회장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팀이라는 인식이 강할 것이다. 그만큼 애착도 클 것이다. 팀 킴을 자신의 소유물 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김 전 부회장 일가가 컬링을 전파하고 뿌리내리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인정하고도 남는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이 인지하지 못한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호소문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들은 어떤 이유에서도 비난과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팀 킴이 올림픽에서 이뤄낸 결실은 그들만의 것은 아니다. 동고동락한 지도자의 몫도 있다. 그렇지만 선수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한 것 또한 지도자의 책임일 것이다. 그나마 김 전 부회장이 4일 선수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컬링계를 떠나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선수나 지도자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길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이번 감사에선 각종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선수는 물론 지도자 모두 한 점의 억울한 부분이 없도록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이번 사태로 인해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 경북도와 의성군, 경북체육회 등 관련 단체들은 감사 결과에 관계없이 향후 선수들이 마음 놓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비인기 종목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한국컬링이 이번 사태로 퇴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