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왈츠
꽃의 왈츠
  • 승인 2018.12.1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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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팔공산 한티재로 오르는 대로를 달린다. 길가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들의 당당한 자태를 본다.

바람의 지휘봉을 따라 노랑나비 떼가 하늘의 기별인 듯 ‘꽃의 왈츠’를 춘다. 한차례 악장을 넘길 때마다 본체를 드러내는 저 나무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초등학교 시절, 삶의 위기를 맞을 적마다 사람의 귀하고 천함은 항상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언행일치’에 달려있음을 강조하며 어깨를 다독여 주시던 선생님을 얼마 전, 다시 만났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른 해 만의 일이었다.

통지표의 뒷면 행동발달상황란에 ‘나이에 비해 너무 어른스럽다’고 쓰시고는 애처로운 속내를 슬그머니 보여주시던 분이었다.

어린 내 어깨 위에 짐 지워진 삶의 무게를 어른들의 잘못 인양 미안해하시던 선생님. 바닥을 치면 그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만이 바로 설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시던 분이다. 생의 사거리, 비보호구역에서 지도를 펼칠 때마다 선생님이라는 군림을 멈추고 기꺼이 바닥으로 내려와 학생들 곁에 머물기를 선택함으로써 우리들, 삶의 지표가 되어 주던 분이다.

덕분에 학교를 다니는 내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내 꿈을 단 한 번도 접은 적이 없었다.

산을 오르며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자 이 길을 나섰던 것일까 생각 해 본다. 차를 세운 후, 내려 맨땅을 디뎌본다. 반갑다는 듯 나뭇잎이 떨어져 발등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길을 잃으면 지도를 펼쳐야 하듯 내가 쓴 글을 선생님께 보이며 가야 할 방향을 묻곤 했다. 그 때마다 ‘축하한다. 글이 많이 세련되어 가는 것 같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불러주며 ‘네가 참 많이 자랑스럽구나!’ 흡족해 하셨다. ‘잡다한 생각의 흙탕물이 일면 그대로 가만히 놓아둠으로써 내면을 들여다 봐야한다’ 그렇게 ‘가라앉힌 후 떠오른 정제된 생각으로 글을 써야 한다.’며 호된 꾸지람도 서슴지 않았다. 내가 쓴 글들이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얹어주셨는데…….

문자가 날아든다.

“꼭! 끝까지 읽어 봐야 된다.”

선생님이 보내신 가짜 뉴스다. 백세까지는 아니라 쳐도 육십 년만 헤아려 십분의 일 밖에 안 되는 초등학교 육년, 그 중 일 년이 선생님과 인연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 일 년의 인연으로 그 분께서 내게 해 주었던 채찍과 당근의 말은 삶의 지표가 되었었다.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날아 든 문자로 인해 또다시 난 비보호구역에 선다. 거짓이 사실을 압도하는 세상인 듯 보인다. 사실에 사회적 맥락이 더해진 진실이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체로금풍만월추(體露金風滿月秋)’ 란 성어가 있다. 어느 날 제자가 스승인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질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께서 답하셨다.

“체로금풍!(體露金風)”(벽암록 제27칙)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민낯의 모습처럼 체로는 본체를 드러낸다는 뜻이며, 금풍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뜻하는 말이다.

풀이하면 ‘가을바람에 낙엽이 모두 떨어져 결국 나무 본연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는 의미가 된다. 눈에 보이는 단풍만 보고 단풍이 져 드러난 나뭇가지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을 일러 비유한 말일 것이다. 나뭇잎이 시들어 갈바람에 흩어지는 때, 자극적 프레임 뒤에 가려진 선생님의 숨은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은 그림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 작가가 있다.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것 보다는 그림을 바라 볼 때처럼 서너 발자국 정도 떨어져서 인생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숲이 보이고, 희미하던 윤곽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그 속에서 새삼스레 아름다움과 맞닥트리게 되기도 한다. 그림을 잘 보려면 몇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 것처럼 인생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남은 12월, 새 다이어리의 첫 장에 옮겨 적으며 마음에 담아본다. 깊이 파고들어 내 안을 바라보기에 좋은 저녁, 채웠던 단추를 풀고 잠옷으로 갈아입으며 길에서 주워온 노란 은행잎을 책갈피 사이사이 끼워 넣는다. 동면에 들 듯, 겨울이 우리 곁에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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