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사람죽이기-시간강사법
웃으면서 사람죽이기-시간강사법
  • 승인 2018.12.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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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아
이학박사·전 대구시의원
호의를 가지고 멋모르고 한 일이 상대방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일격이 된 적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잘 모르고 그랬다’의 변명이 자동으로 나온다. 하지만 나라가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이 이 모양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고쳐져야만 한다. 그렇지만 한번 정책화된 것은 결코 쉽게 철회되지 않고 결국 민심이 지쳐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서서히 시행해서 당사자들은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꿈과 희망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게 된다. 무슨 서론이 이렇게 길어? 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필자는 비슷한 처지에 있으나 어떠한 목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는 전국의 많은 동지들을 위해 오늘은 기고하고자 한다.

교육계의 보따리장수 시간강사와 관련하여 신분보장과 처우 개선을 위해 마련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결론은 고학력 실업자 양산이다. 처음 이 법을 들었을 때 많은 시간강사들이 자신들도 ‘이제 사람답게 대접 받는구나’라는 생각을 스치듯이 했을 것이다. 가방끈은 길어서 어디 가서 자신의 처우에 대해서 부끄러워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고 살았던 많은 시간강사들. 그들의 현실을 종사자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반응은 참으로 똑같다. “아니 그러고 어떻게 살아?”

많은 시간강사들은 대학에 번듯한 자리 하나 마련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며 이를 위해 그 어떠한 불이익도 마다하지 않고 다음 학기 강의를 배정이 두려워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건의 한번 하지 못한다. 학교의 강의 시수 대폭 축소 내지는 폐강이라는 일방적인 횡포에 가까운 통보에도 그 자괴감을 표현하기는 커녕 다음 학기라도 잘 부탁한다는 말로 늘 ‘을 중의을’의 바짝 엎드린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들에게 4대 보험 지원과 교원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시간강사법이 처음에 나왔을 때 몇몇 순진한 시간강사들은 안도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많은 대학에서는 이러한 시간강사의 처우개선을 위한 재정마련이 힘들다는 이유로 법 시행이 본격화되기 전에 시간강사의 강의를 학부별 대폭 축소를 지시하고 실제로 필자가 출강하는 학교들에서 그러한 움직임을 보고 있다. 수년을 해당 강의를 맡아 온 시간강사는 다음 학기에 그 과목이 정교수에게 배정된다는 것을 알게 돼 허탈함을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하고 꾹꾹 누르는 것도 보았다. 더 암담한 것은 이것이 정해진 미래, 바꿀 수 없는 미래라는 팩트이자 현실이라는 것이다.

미디어 사회답게, 4차산업을 사랑하는 시류답게 사이버 강의로 많은 교양과목이 전환되고 있다. 한 번만 녹화하면 몇 년이고 써먹을 수 있어서 해당 교양과목을 여러 강사에게 쪼개어 운영하던 학교들은 인건비를 포함한 재정악화를 운운하며 현장강의에서 온라인강의로 많이 바꾸는 중이다. 이는 결국 시간강사들의 해고라는 종착지로 오게 된다. 현재의 출산율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향후 17년 뒤면 대학에 입학하는 전체 정원수가 반토막이 된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는 수많은 지방대와 전문대들은 폐교라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대학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인력의 운영 규모를 줄이고 부가적인 시설투자로 외형개발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이는 결국 서서히 하지만 거세게 더 많은 교강사의 해임으로 연결될 것이다.

학교와 전공마다 천차만별인 시간 강사료가 최고 8만원 최저 3만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시간강사들은 학기당 6학점을 강의해도 200만 원도 채 안 되는, 일부는 96만여 원을 받으며 생활해야 한다. 시간강사법으로 인해 대학원 졸업자에게 주던 시간강사자리도 분명 요원하게 될 것이다. 이는 대학원 입학생의 숫자도 격감으로 이어질 것인데 결국 지식이 우리 사회에 생착하기는 더더욱 힘든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될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여러 민생법안이 이렇게 해당 직종의 국민을 말살시키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는 것, 제발 숫자에 놀아나지 말고 현실을 ‘제대로’ 알고 시행하기를 간곡히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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