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박근일… 정물, 온전함을 향한 힘
[서영옥이 만난 작가] 박근일… 정물, 온전함을 향한 힘
  • 서영옥
  • 승인 2019.01.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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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신체에 대한 반작용으로
완벽함 요구되는 정물·풍경화 선택
사실적 묘사에 저채도로 감정 전달
꽃1
박근일 작 ‘모란’

 

서영옥이 만난 작가, 박근일

 

활짝 핀 꽃들이 객을 반긴다. 모두 붓으로 피운 꽃들이다. 그 위로 흐르는 시간의 결이 차분하고 침착하다.

고속도로를 달려 박근일의 화실에 도착했다. 화실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과거로 돌아간 듯한 시간이다. 딱딱하게 굳어서 높이를 더하던 물감에 눈길이 먼저 가 닿는다. 이젤 곁의 낡은 파레트와 붓 등, 화업이 곧 화가의 삶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단서는 그 밖에도 많았다. 초록은 동색이다. 화구들이 반갑다. 바로 화가 박근일의 화실 풍경이다.

박근일은 포항에서 나고 자라서 뿌리를 내린 포항 토박이 화가이다. 그의 화실에는 크고 작은 캔버스가 빼곡했다. 캔버스는 대부분 정물과 풍경으로 채워졌다. 우리 삶의 주변을 보고 빚은 흔적들이다. 묘사에 천추의 한이라도 맺힌 걸까. 입체적인 형태가 반듯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흠결 없는 구도와 무르익은 색감은 얼핏 보아도 화가의 농익은 묘사력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밀도감을 뽐내던 박근일의 회화는 주제를 고상하고 진지하게 만드는 아카데믹한 예술이다. 아카데믹한 이론으로 점철된 조형언어라는 것 외에는 작품의 격을 끌어올릴 만한 차별화된 요소는 없다. 그 위로 포개어진 세월의 질곡이 다원화된 현대미술의 잣대로 겨눌 수 없는 기준점을 유지하고 있다.

화가 박근일의 하루는 그림으로 시작해서 그리기로 마무리 짓는다. 일주일에 몇 차례 문화센터에서 하는 강의를 제외하면 칩거에 가까운 화실생활이 그에게 주어진 하루의 전부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지금(54세)까지 일관되게 지켜온 삶의 방식이다. 유년기부터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있었던 박근일은 독학으로 공부해서 미대생이 되었다. 유명무실했던지 교수의 가르침에는 기대지 않았다고 한다. 화가가 되고난 후에는 미술가 단체를 멀리했다. 잠시 몸담았던 작가그룹에서는 일찌감치 탈퇴했다.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만한 등용문과 가까워질 기회를 스스로 밀어낸 셈이다. 자기 기준과 어긋난 삶의 부조리에 대한 반발인 듯하다. 미술가 그룹에서 자진 탈퇴한 후 긴 세월을 한 우물만 팠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며 평생 그리기에만 몰두한 화가에게 그림은 곧 꿈이자 현실이며 생활이었다. 바로 화업으로 삶을 일구어온 변방작가 박근일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석류-1
박근일 작 ‘정물’

세상에는 세월을 역행하며 사는 삶도 있다. 상식 밖의 일들도 많다. 누군가를 앞질러 가려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변해버린 가치관을 발 빠르게 따라잡는 사람도 있다. 간혹 비슷한 취향이나 코드를 동경하며 오마주(Hommage)하기도 한다. 화가 박근일의 경우이다. 박근일은 동경하는 화법을 스스로 탐독하고 체득한 화가 부류에 속한다. 엄밀히 말하면 박근일의 회화는 르네상스나 신고전주의 화풍에 가깝다. 묘사력에 대한 자신감이 화격과 맞먹는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작가 스스로가 지켜나가는 예술관에는 자부심이 충일하다. 그림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식의 담담한 표정도 비루하지 않다.

실제 사물을 포착해서 그린 박근일의 그림은 즉물적(卽物的)이다. 환영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이 아발론 같은 이상세계와는 거리를 둔다. 관념이나 추상적인 사고와의 개연성도 희박해 보인다. 표현보다 재현에 무게를 둔 박근일이 주목한 장르는 풍경화와 정물화이다. 정물은 오래 두고 관찰하며 묘사하기 좋은 대상물이다. 17세기 네들란드 화가들의 정물대에는 해골이 오르곤 했다. 죽음(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다. 죽음의 전조를 시간성에 빗댄 바니타스(vanitas)의 도상으로는 꽃이 대표적이다. 감정이나 형태묘사보다 형상의 본질에 주목한 세잔(Paul Cezanne)의 사과는 해골과 꽃이 주요소재로 다뤄지던 시대로부터 200여년 뒤에나 확인할 수 있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화가 박근일의 정물이 겨냥한 과녁은 무엇일까. 그림은 가끔 형식이나 양식 또는 이념에 앞서 화가의 인생부터 경청하라고 한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약(藥)이 지닌 가치에 대한 인식도 약하다. 로트렉(Toulouse-Lautrec)과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병약했던 화가로 종종 거론된다. 선천적으로 약골이던 로트렉은 사고 후 청소년기부터 다리의 성장이 멈추었다. 프리다 칼로도 교통사고 이후 불편한 몸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박근일도 이들처럼 아팠던 과거가 있다. 불편한 육신일수록 완전함(또는 온전함)에 대한 갈구가 크다. 절실함은 잠재력을 깨운다. 아픈 예술가들의 공통점이지 싶다. 로트렉은 매춘부들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을 그렸고, 프리다 칼로는 남편(디에고 리베라)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자신의 아픈 몸에 빗대어 그렸다. 화가 박근일은 완벽한 형태묘사에 더해 색채에 감정이입한 케이스다.
 

정물-30M
박근일 작 ‘정물’

감정과 직결된 조형요소로는 색이 으뜸이다. 박근일이 운용한 색은 대부분 저채도에 가깝다. ‘색료(물감)’의 집적 때문으로 판단된다. 수년 동안 작품제작의 마침표인 싸인을 보류할 만큼 박근일은 시간을 두고 그림을 다지고 다진다. 실수를 보완하고 앞서 한 실수는 그 다음 붓으로 고쳐나간다.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결함들은 시간을 할애해 수정한다. 이때 축적된 색은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온다. 내면이 투영된 색의 층위는 트라우마로 점철된 시간의 결이라 해도 무방하다. 시간의 결은 날것을 숙성시켜온 자기성찰의 시간과도 맞닿는다. 삶이든 그림이든 설익은 채로 두지 않으려는 화가의 노력이 얼비친다. 불안과 결핍이 동반된 그 과정의 결과가 침착하면서도 차분하다. 정신적 완성을 향해 가는 구도자의 수행이 이와 다를까. 그것이 완성을 염원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표정과 닮아있다. 바로 박근일의 그림이 짓고 있는 표정이다.

하여 박근일이 그린 만개한 꽃은 메멘토 모리나 바니타스의 의미보다는 ‘완성 지향’쪽으로 기울어 있다. 바로 그의 그림에서 아카데믹한 그림이 갖춘 여러 가지 가치분석을 뒤로 미룬 이유이다. 작품의 가치를 형식의 진부함이나 고루함 또는 새로운 표현으로만 단정 지을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21세기에도 그림은 여전히 재현과 표현사이에서 갈등한다. 내용과 형식은 이분법으로 갈린다. 미술사는 여기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그 맥을 이어왔다. 혁명이야말로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돌파구였다. 박근일의 회화는 이 대목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그의 화실에 들어서는 순간 헤르만 헤세 작「데미안」의 병아리가 떠오른 이유였다. 그러나 강요는 무례다. 다만 궁금할 뿐 변화는 작가가 선택할 몫이다. 분명한 것은 일생을 그림으로 사유한 박근일의 캔버스가 그의 표정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그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붓으로 오롯이 자기에게 집중하는 화가 박근일의 화업을 ‘소확행’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이다. 평생 예술로 자기를 표현하고 다져오는 화가의 일상(삶=그림)을 경청하게 되는 이유이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인물1
 
△박근일= 동국대학 미술학과졸업. 경북 포항에서 작업. 개인전1회, 단체전 그룹전 다수에 참여. 현재 한국미술협회, 문화센터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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