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잘가요, 미스터 선댄스 키드!
[백정우의 줌인아웃]잘가요, 미스터 선댄스 키드!
  • 백정우
  • 승인 2019.01.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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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드포드의 은퇴작 ‘미스터 스마일’
백정우의 줌 인 아웃
 

한적한 술집에서 도박판이 벌어지고 한 명이 돈을 몽땅 딴다. 돈 잃은 남자가 돈은 두고 나가라며 권총을 만지작거리자 돈을 딴 사내는 더 있다 가라고 부탁하면 조용히 나가주겠다고 이죽거린다. 일촉즉발 위기상황에서 사내의 동료가 나타나, “난 이젠 한 물 갔어. 너도 항상 청춘일 순 없어, 사람이 늙으면 한 물 가는 법이야” 라며 그냥 나가자고 설득한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부치 캐시디와 행동이 먼저인 ‘선댄스 키드’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 ‘내일을 향해 쏴라’의 오프닝 시퀀스이다. 돈을 딴 남자, 더 있다가 가라고 청할 때만 못이기는 척 나가겠노라 이죽거린 남자, 바로! 로버트 레드포드다. 귀신같은 총잡이 선댄스 키드를 연기하면서 로버트 레드포드는 출세가도를 달린다.

꼭 50년 전, 억지로 밀어내면 절대 안 가겠다던 남자가 제 발로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의 마지막 출연작이라 선언한 ‘미스터 스마일’(원제 The Old Man & The Gun이다.)에서 레드포드는 퇴물 은행 강도 포레스트 터커를 연기한다. 거친 입자의 슈퍼 16mm 필름을 선택해 아날로그 정서를 21세기로 소환한 감독의 관심사는 레드포드를 향한 헌사이다. 그리하여 느림을 원숙함으로, 여유와 침착성을 신사적 태도로 치환시키며 위대한 배우의 여정을 되밟는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케이시 애플렉을 연기초보로 전락시키는 레드포드의 아우라는 명불허전(‘차이나타운’에서 천하의 잭 니콜슨을 왜소하게 만든 존 휴스턴이 무색할 지경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마주칠 때 콧잔등을 치는 장면으로 ‘스팅’을 오마주하고, 17번 투옥과 16번의 탈옥 과정을 설명하며 레드포드의 연대기를 전시한다.

평생에 걸쳐 스타와 감독과 제작자로 할리우드를 종횡한 레드포드는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환경문제와 자연보호에 힘썼고 아메리칸 인디언의 권익과 동성애자 인권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한 그의 행동주의 중심에 유타가 있다. ‘내일을 향해 쏴라’를 끝낸 레드포드는 유타주 (State of Utah)에 집을 지었고, 집 주위에 리조트를 만들어‘선댄스’라 이름 붙인다. 1981년 독립영화감독을 위한 선댄스 협회를 세웠고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소규모로 열리던 영화제를 흡수·통합해 1985년 선댄스 영화제를 출범시킨다. 스티븐 소더버그, 코엔형제,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를 발굴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독립영화제의 탄생이다.

‘미스터 스마일’의 백미는 레드포드의 얼굴과 손을 클로즈업하는 순간이다. 주름 가득한 얼굴과 자글자글한 손의 주름이 훈장처럼 펼쳐진다. 배우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 힘이 여전한 레드포드일진대 카메라는 거침없이 얼굴로 돌진해 깊고 굵은 주름을 완성시켰다. 나는 이것을 배우와 관객이 영광의 시간을 공유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배우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과 만날 때 관객은 그의 영화와 함께한 경험과 시간을 반추한다. 영화도 관객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는 말은 그래서 참이다.

영화사를 돌이켜 보면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해 오욕의 말년을 보낸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만큼 무대를 떠나겠다는 선언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으로 크레딧 최상단을 장식해온 톱스타에겐 더더욱 그렇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미스터 스마일’이 장구한 영화인생을 달려온 노배우의 위풍당당 품격 높은 은퇴사인 까닭이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미스터 선댄스 키드!

백정우(영화평론가·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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