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
편 가르기
  • 승인 2019.01.23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호(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너는 진보가? 보수가?”

얼마 전 초등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뜬금없이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아니 못했다. 먼저 진보와 보수를 무엇으로 구분할지가 명확하지 않아서였고, 흔히 말하는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정해지는 순간 친구와 내가 편이 나뉘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 후 현 대통령이 어떻고, 북한이 어떻고 얘기로까지 발전되었다.

이상하게 나는 그 상황이 싫었다. 오랜 초등 친구와 나 사이에 정치가 딱 편을 가르는 것 같아서. 옆에서 졸던 또 다른 친구가 나서서 “친구끼리 정치 얘기는 하지말자”라며 그렇게 넘어는 갔지만 찜찜함은 어쩔 수 없이 내 맘 한 구석에 남았다.

어릴 때부터였다. 우리가 편 가르기를 한 건. 마을에서 친구들과 놀 때도 가위 바위 보 혹은 데덴찌(일본어 手天地에서 따온 말, 손등과 손바닥이라는 뜻)를 외치며 손바닥이나 손등을 내밀어서 같은 것을 낸 사람끼리 한 편으로 편 가르기를 하였다. 평소 친하지 않았던 친구라도 한편이 되면 이상하게 동질감을 느꼈다. 비석치기, 말뚝 박기, 공기놀이 같은 걸 하면서 편을 나눴고 같은 편이 된 이상 상대편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대동단결하여 한편이 되었다.

편 가르기로 나뉜 편은 계속 이어지기보다는 대체로 다음날이면 다시 편을 짜서 편이 바뀌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분명 어제는 반대편이라서 나의 적이라고 생각했던 밉상스러운 친구도, 오늘 같은 편이 되면 이상하게 한편이란 생각에 밉지도 않았고 그냥 좋아 보였다. 어제의 한 편이었더라도 오늘 반대편이 되면 절대 봐주는 법이 없었다. 편 가르기는 어제의 친구가 적이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도 늘 편을 나누어서 겨루었다. 누구는 백군이 되어 머리에 하얀 띠를 둘렀고 누구는 청군이 되어 머리에 파란 띠를 둘렀다. 청군과 백군이 나뉘게 되면 잘 지내던 한 반 친구들도 이상하게 편이 나뉘었다.

편 가르기는 힘이 있다. 좋게는 서로 같은 편끼리 결속을 다지는 힘이 있고, 나쁘게는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적대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선을 그어서 그 선 안에 들어가면 한 편이 되고 그 선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반대편이 된다. 선을 넘어서 우리는 적이 되어 싸움을 하고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미움을 키워나간다.

지금 우리 사회도 편이 갈라져 있다. 남자와 여자로 편을 가르고, 진보와 보수로 편을 가르고, 남한과 북한으로 편을 갈라놓았다. 누가 편을 나눴는지는 궁금해하지 않고 우리는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을 싸움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들과 싸우기 바쁘다. 나는 이런 편 가르기가 정말 싫다. 편 가르기 하지 말고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 좋아하는 지인의 SNS에서 시(詩) 한 구절을 보게 되었다.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이 짧은 시구(詩句)가 내 맘에 들어왔다. 찾아보니 92세에 시인이 되고 99세에 첫 시집을 낸 일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시였다. 그는 101세의 나이로 2013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를 쓴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시인이었다.

편 가르기를 하고 그 반대편을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있는 우리 세상을 보며 한쪽 편을 들지 않는 햇살과 산들바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그녀의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약해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