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인가?
  • 승인 2019.01.2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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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 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원래 부끄러움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부끄럽다’는 느낌 속에는 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담기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법과 규범에 지배되는 도덕적 감정이라면, 부끄러움은 법을 벗어난 지점에서 인간의 존재와 만나는 존재론적 감정이다”라고 이명호 경희대학교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비로소 인간다움을 획득한다. 인간의 ‘성찰’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부끄러움’은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로 작용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느끼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민감도가 제각각 다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랐던 윤동주나,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했지만 23년 동안이나 ‘살아남았다’는 부끄러움을 짊어지고 살아가다가 수많은 명저를 남기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레모 레비처럼 순정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얼굴로 자신의 잘못을 끝끝내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을 수없이 봐왔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아이히만(Adolf Eichmann,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 유태인 학살자)은 인간다운 부끄러움을 몰랐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성실하고 효율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였던 아이히만은 늘 당당했다. 그는 전범재판에서 “나는 어떤 잘못도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살상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했을 뿐이며, 관료로서 맡은바 책임을 다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죄는 그저 성실하게 일한 것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는 인간, 타인의 고통을 지각하지 못하는 인간, 그래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 그것은 인간일 수 없다’는 잔혹한 사실과 마주한다. 이 잔혹한 사실이 무시무시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 존재할 때 그곳에서 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죄 지은자의 부끄러움이 없는 곳, 인간의 자기성찰이 없는 곳에서 죄는 쉽게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리고 그 정당성은 다른 인간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최근 뉴스에서 인간이 가져야하는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프레모 레비의 책이름을 떠올렸다. ‘이것이 인간인가?’

어릴 때부터 가르친 제자를 수년간 성폭행하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을 일삼는 스포츠 지도자들과 배후 세력들,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동물 400여 마리를 안락사 시키고도 대표직을 내놓을 수 없다고 버티는 동물권단체 대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매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인면수심의 말을 하지 않나, “치매에 걸려서 재판출석을 할 수 없으나 골프는 칠 수 있다”는 전직 대통령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들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에 치를 떤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과 그 상황에서 생긴 피해자들에 대한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은 능력의 문제이기 이전에 굉장한 폭력과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그들의 뻔뻔함에 분노하면서, 나는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을 반드시 내 아이에게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한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거나 좋은 직업을 가지지 못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인간으로는 살아가야 하기에.

최근에 박경리의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어보니 토지는 인간의 부끄러움을 말하는 소설 같이 느껴진다. 소설에서 전쟁 중인 군인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주먹밥을 자신의 동생에게 몰래 준 누나가 나온다. 동생은 그 주먹밥을 먹으며 부끄러워한다. 군인들에게 가야할 음식을 자신이 먹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사람이 “염치는 배부른 사람이 챙기는 거지, 너처럼 굴다가는 굶어죽을 기다”라고 핀잔을 놓는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불쑥 이런 말을 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염치를 채리야만 그기이 사람이제. 있고 없고가 상관없는 기라.”

그렇다. 염치를 차려야만,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그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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