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최해구 '사진에 영감·물감 버무린 독창적 페인팅'
[서영옥이 만난 작가] 최해구 '사진에 영감·물감 버무린 독창적 페인팅'
  • 서영옥
  • 승인 2019.01.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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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터키…이국 풍경 사진 촬영
채색·드로잉·컴퓨터로 재편집 반복
원본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작품 탄생
관람객에 다양한 해석의 지평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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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구 작.

 

서영옥이 만난 작가, 최해구

여유를 가질 때 질주하던 삶도 멈춘다. 행복을 찾아 나서기도 수월하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 찾아올 때쯤 행복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바로 작가 최해구의 Life Style이자 그가 추구하는 작업의 밑바탕이다.

여행하고 여행지를 기록한 사진을 토대로 작업하는 작가 최해구는 대구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안동에서 꾸준히 작업하는 50대 초반의 화가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뒤 본격적으로 작업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지난 2018년 10월 Moro 갤러리(안동)에서 연 첫 개인전은 그가 작가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나이에 비해 빈약한 경력이 아쉽지만 최해구의 삶은 줄곧 작업 곁이었고 다양한 단체전에 참여하는 것으로 작가로서의 근육을 단련시켰다. 안동시 변두리에 자리한 그의 화실에는 여행한 흔적과 그 흔적을 소환하여 제작한 작품들이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해구의 라이프 스타일은 청년기부터 정주하지 않는 삶으로 기울었다. 사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던 민중미술가가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시선을 자기 안으로 거두어 들였다. 시선의 이동은 관심과 신념의 이동을 의미한다. “나는 화가다”라는 자부심이 강한 최해구에게 작업의 출발점은 그림이다. 사진의 리얼리즘에 회화적인 테크닉을 포갠 작업방식을 고수하는 최해구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화가이다. 사진을 바탕으로 한 회화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7년 전 부터다.

최해구의 화면은 대체로 밝고 경쾌하다. 붓질 속에 가려서 보일 듯 말 듯한 이국적인 풍취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결과이다. 그가 여행한 나라는 태국, 인도, 중국, 러시아, 노르웨이,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웨덴… 등 숱하다. 헝가리의 붉은 벽돌집 모퉁이를 걷거나, 터키 어느 마을의 식당가와 호수 언저리를 거니는 등, 틈틈이 현실을 떠나 낯선 곳을 찾아 나선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가고 살았던 흔적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체험했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는 경험이다. 일상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이 새롭다. 최해구 작가는 한국을 벗어나 서유럽의 낯선 거리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응시하다가, 로마의 유적지에 매료되어 잰 걸음 쳤던 경험을 캔버스에 옮겼다. 체코의 광장에서는 데쟈뷰를 경험했다. 마치 자신의 과거인 듯해 소스라쳤던 경험까지, 생경한 시·공간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시각을 새롭게 방향 잡아주고 지엽적인 사고의 폭을 확장시켜준 세계여행이 최해구에게는 창작의 원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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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구 작.

그는 이국에서 마주친 낯선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진으로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기억의 편린들을 긁어모은다. 이어서 영감과 추억을 붓으로 버무리고 걸러서 편집한다. 무작위로 찍은 수많은 사진은 최해구가 하는 작업의 바탕자료인 셈이다. 이때 사진은 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멀다. 사진 위에 물감으로 지울 것을 지운 다음 다시 컴퓨터로 수정과 교정을 반복하다보면 사진의 처음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쇄까지 마치면 사진은 본바탕과 전혀 다른 폼을 한 작품으로 탄생한다.

이때 이미지를 지운 붓 자국을 무의미한 물감자국으로 보면 곤란하다. 붓이 지나간 흔적은 작가가 이미지의 본래 의미를 새로운 의미로 거듭나게 하는 성인식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제스퍼 존스(Jesper Johons)나 로버트 라우젠버그 (Robert Rauschenberg)의 작품이 오버랩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존스는 미국 문화의 상징인 깃발에서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이것이 깃발인가 깃발그림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적 있다. 결과적으로 존스나 라우젠버그의 작품과 최해구의 그림은 자기 지시적이며 오브제에 그려진 이중 구조의 화면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난다.

공자는 논어에서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그림 그릴 밑바탕을 잘 마련해 놓으라는 의미이다. 마음 바탕에 강조점을 둔 말이지만 최해구의 작업 전 준비들 즉, 작품의 토대가 될 만한 이미지를 확보하는 일련의 과정을 회사후소에 비유하면 무리일까. 그의 노력을 일종의 독창성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최해구의 붓질에서 느껴지는 고유한 감과 흥도 독창성이라면 독창성이겠다. 그랬을 때 존스나 라우젠버그 작품과의 교차점도 느슨해진다. 독창성은 비슷한 형상에서 다른 형상을 떠올리는 것과는 다른 수준의 창작요소이다. 레디메이드의 경우가 그렇다. 사물이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하는 순간은 어떤 의미를 부여받았을 있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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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구 작.

레디메이드인 뒤샹의 작품 <샘>은 특별한 감성을 자아내지 않는다. 전시되는 순간부터 용도 폐기된 변기는 기능성을 상실했다. 세련미나 충격적인 이미지라고도 할 수 없는 <샘>은 제목을 달고 사인해서 전시한 기성품에 불과하다. 이러한 <샘>을 보기 위해 전시장으로 몰려든 관객들은 기성품을 작품으로 출품하게 된 계기와 결단, 작가의 진보적인 실천을 찬탄한다. 자전거 안장과 핸들을 조합한 피카소의 황소머리<bull‘s head>도 같은 맥락이다. 엄밀히 말하면 관람자들은 작품 감상보다 작품 제작과정을 분석한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에 관심이 적은 현대미술은 이와 같은 진보적인 실천을 독창성과 결부시킨다.

최해구의 작품은 어떤가. 최해구는 작업할 때만큼은 작가 스스로가 즐거워야 한다는 심념의 소유자다. “나의 작업은 재미에 의미를 둔다”고 한 최해구는 자신의 작업을 ‘임팩트 있는 사진에 기댄 회화’라고 명명한다. 무거운 인생철학이나 심오한 예술이론에 빚지지 않으려는 그의 작품 제작방식은 제작과정 자체의 유희를 존중한다. 하여 마침표를 찍은 그의 그림에서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시각적 쾌감이다. 쾌감에 도움을 준 채색과 드로잉은 사진이 사진자체이기를 방해하면서도 보다 다양한 해석의 지평(地平)을 열어준다.

문제는 작가의 독백과도 같은 주제 <락(樂)>이 이끌어낼 설득력이다. 자칫 즐거움만 추구한 예술이 예술의 무게와 가치를 휘발시킬까 하는 염려도 추가된다. 최해구의 작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사진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파괴하고 훼손하면서 남긴 엣센스에 작가의 작업의지가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최해구의 작업유희가 단순한 유희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 다만 공감과 발견은 관람자들의 몫이다.

어둠이 빛을 밝게 조명하듯 추와 불쾌는 미와 쾌를 부각시킨다. 喜怒哀樂(희로애락) 중 최해구가 특히 삶의 즐거움(樂)에 집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 어둠은 제거나 거부할 대상이라기보다 극복할 숙명이다. 삶이든 예술이든 가려진 이면을 유연하게 녹여낼 때 그 울림이 깊고 클 것이다. 출발은 조금 늦었으나 응축된 열정으로 양면을 고르게 운용하여 진일보 할 최해구의 다음 작업이 기대된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서양화가 최해구
 
△최해구= 대구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서양화전공) 졸업. 개인전 1회와 신세기청년작가전, 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2000(대구), 경북청년작가전, 두개의 공간전, 남부현대미술제(이합과 집산-대구), 특별한 그들전, 한중교류전 등 그룹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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