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숙인 사람들
머리 숙인 사람들
  • 승인 2019.01.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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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올 해 아들은 19세다. 내년이면 십대를 졸업하고 이십대가 된다. 벌써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나? 아직 어린 애 같은데 이십대가 된다니 놀랍기만 하다. 아들의 십대를 돌이켜본다.

십대가 되기 전까지 아들은 잘 놀았다. 집 안에서도 뛰어 놀았고, 집 밖에서도 뛰어 놀았다. 동생과 동네아이들과 자전거도 타고, 잡기놀이도 하고, 무언가를 하며 까르르깔깔 거렸다. 베란다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즐거워졌다. 잠시도 조용히 쉴 틈이 없었다. 가끔은 좀 차분했으면, 좀 점잖았으면 하고 바랬다. 천성이 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엄마가 바라는 남자의 ‘이상형’에 가까웠으면 했다. 엄마의 바람과 무관하게 아들은 자기 천성대로 밝고 쾌활했다.

십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아들이 현실세계에서 놀지 않고 가상세계에서 놀았다. 그즈음에 ‘닌텐o’라는 게임기가 유행이었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과 만나서 밥도 먹고 놀기도 하였는데,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 게임기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잘 어울리라고 축구도 하는데 축구 끝 게임시작이었다. 친구들과 놀 생각에 활기가 넘쳤던 아들은 풀이 죽었다. 엄마가 바란대로 차분해졌다. 점잖아졌다. 친구들은 있었으나 놀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아들은 용돈을 모았다. 용돈, 세뱃돈을 모아 ‘닌텐0’를 사러 갔을 때 아들은 흥분상태였고, 금액을 치르고 손에 잡았을 때 꿈이냐며 믿기지 않아했다.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PC방도 들락거렸다. 어릴 때 실컷하면 고등학교 때부터는 공부에 집중하리라 믿으며 중3때까지 다녀도 막지 않았다. 늘 말했다. 고등학교가면 게임도 끊자, PC방도 끊자, 공부에 몰두하자. 아들은 알겠다고 했다. 고1이 되어서는 학교에서 심화자습을 하느라 밤 11시까지 공부를 하고 와서 놀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주말에는 도서관을 간다고 하고 PC방을 다녀온 듯했고, 고2 겨울방학인 지금은 방에서 게임을 대놓고 하고 있다. 좀 쉬어야 한다고 한다.

일요일 속이 상해 혼자서 도서관에 바람도 쐴 겸 책을 읽으러 갔다. 커피 한 잔 뽑아서 바람의 향기를 쐬고 있는데 검은 패딩을 입은 가족이 앞을 지나갔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가족구성원은 아빠, 엄마, 누나, 동생이었다. 아이들뿐이 아니라 부모까지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만 보면서 길을 걸었다.

우리 가족도 외식을 가면 아이들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쳐다본다. 음식만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하기 위한 의도도 있어 주머니에 넣으라고 한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지만 사소한 대화를 한다. 휴대폰은 참 끊기 힘든 중독인 듯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마저 휴대폰을 보느라 머리를 숙이고 있는 잔상이 뇌리에 계속 남으며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해본다. 그러는 와중에 신문기사를 보니 우리나라뿐 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디토우주’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라고 한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가 항상 숙여져있는 사람들을 묘사할 때 쓰는 ‘머리숙인 사람들’ 뜻이란다.

아이들이 휴대폰이나 게임이 아니라 사람의 얘기를 듣고, 휴대폰이나 게임이 아닌 다른 일에 집중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몰두하도록 하자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오늘도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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