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은 설경...숲은 얼어붙었지만 마음은 녹아내린다
자연이 빚은 설경...숲은 얼어붙었지만 마음은 녹아내린다
  • 김광재
  • 승인 2019.02.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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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
눈 제법 쌓여 겨울 풍경 연출
전기차 정지·치유 숲도 막혀
얼음동산서 눈 구경에 만족
눈밭에 신이 난 아이들 ‘깔깔’
소재교 넘어 들어선 소재사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 ‘힐링’
비슬산자연휴양림얼음동산
비슬산자연휴양림 얼음동산.

비슬산 자연휴양림에서 전기차를 타고 올라가, 강우 레이더 관측소와 대견사 주변을 둘러보고 걸어 내려오거나, 그와 반대로 걸어 올라갔다가 전기차를 타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테크노폴리스로를 따라 비슬산 방향으로 가는데 주변 산들에 눈이 점점 많이 쌓여 있었다. 이틀 전 대구에 내린 눈은 양도 적었고 금세 녹았는데, 이쪽은 같은 대구지만 제법 눈다운 눈이 내린 모양이었다. 눈 귀한 이번 겨울에 그나마 볼만한 설경이었다.

비슬산 자연휴양림 공영주차장에 도착했다. 매점 앞 지상 주차장엔 수십 대 차가 서 있고 나머지 넓은 주차장은 하얗게 눈에 덮여 있었다. 눈밭에 신이 난 아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파란 하늘로 퍼져나갔다. 주차장 3층 전기차 매표소 창구는 캄캄하게 닫혀있고, 그 앞에는 ‘폭설로 운행정지’라고 적혀 있는 화이트보드가 놓여 있었다.

이제 걸어서 올라갈 수밖에 없는 형편. 그런데 미처 아이젠을 챙겨오지 않았으니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마침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어 물어보았더니 장비가 없으면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자연휴양림 얼음동산이나 둘러보며 눈 구경, 얼음 구경에 만족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주차장에서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에 낯선 건물이 한 채 있었다. 목재 외장재로 마감을 한, 겉모습만 봐도 건강이니 힐링이니 하는 말이 연상되는 ‘비슬산산림치유센터’였다. 창을 통해 보니 2층에도 실내조명은 켜져 있는데 인기척이 없다. 어깨에 눈이 쌓인 정원석 위에 누군가 눈덩이를 만들어 올려놓고 까만 열매 같은 것 두 개를 붙여 놓은 ‘미니멀리스트 눈사람’만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다.

 

장승-눈꽃
장승 앞 덤불에 목화처럼 눈꽃이 피었다.

산림치유센터 건물을 지나 조금 더 가니 또 처음 보는 ‘비슬산 치유의 숲’ 안내판이 서 있다. 숲내음길, 천천수 치유길, 무릉도원길, 풍경치유길 등이 소개돼 있고, 약도에는 요가데크, 음이온데크, 풍욕장도 표시돼 있다. 그러나 눈 때문에 치유의 숲으로 가는 길도 막혀있다.

소재사(消災寺)로 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장승이 드문드문 보인다. 장승 앞 철쭉나무에는 하얀 눈송이가 목화처럼 달려있다. 소재교를 넘어 소재사 경내로 들어섰다. 언제인지는 잊어버렸지만 이 골짜기에 처음 왔을 때 한번 둘러본 뒤로는 그냥 지나가는 절이었다. 휴양림 들머리여서 주변이 늘 부산한 분위기인데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시간도 넉넉하고 사람들도 적어서 조용히 경내를 걸었다. 절 마당은 발자국도 없는 눈으로 덮여 있는데, 그 가운데를 빗자루로 쓸어 가르마 같은 길을 내어놓았다. 쇄석이 깔린 마당이니 평소엔 길과 길 아닌 곳의 구분이 없었겠지만, 눈과 빗자루가 그 둘을 확연히 갈라놓았다. 그래도 며칠만 지나면 볕 잘 드는 이 마당은 그런 분별이 사라지고, 잔돌들은 서로 비벼대며 차락차락 소리를 내겠지.

신라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비슬산 소재사는 고려 공민왕 때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도 여섯 차례 중수·중창했다고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1673년에 건립됐다. 처음부터 낮은 기단 위에 지었는지 후에 마당을 돋웠는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높이의 바닥에 서서 바라보니 기둥은 짧아 보이고 공포와 지붕은 지나치게 커 보인다. 오히려 그 덕분에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을 줘서 좋다.

안내판에는 “소재사는 절 이름에서 보듯이 일체의 재앙을 소멸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지장도량으로 대웅전 보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서는 현재는 모두 폐사지 상태이나 산내 암자와 더불어 상주 대중이 300여명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고 적혀 있다. 비록 절집 처마 밑은 아니라 해도, 많은 사람이 소재사 골짜기를 찾아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니 이 또한 ‘소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비슬산산림치유센터-1
비슬산 산림치유센터의 ‘미니멀 리스트 눈사람’.

예전엔 사람들이 비슬산 하면 먼저 유가사를 떠올렸고, 등산도 유가사 코스를 많이 이용했다. 그러나 자연휴양림이 조성되고, 도로가 정비되고, 참꽃 축제가 열리고, 대견사가 복원되면서 이제 이 골짜기로 사람들이 몰린다. 자연휴양림 얼음동산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사진을 찍으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다. 계곡 한쪽에는 거대한 얼음벽이 버티고 서 있는데, 꼭대기의 스프링클러에서는 계속 물방울이 뿌려지고 있다. 겨우내 스프링클러는 물을 뿌리고, 자연은 얼리고 녹이고 또 얼려서 여러 형상을 만들어 놓는다.

얼음동산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다시 비슬산 산림치유센터에 들렀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서 안내 팸플릿이나 한 장 얻어갈 생각이었다. 신영숙 산림치유지도사가 친절하게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마침 예약을 취소한 팀이 있다며 실내프로그램을 체험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1층에서 건강 체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편백나무로 마감한 실내에서 창을 통해 눈 내린 숲을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건식 반신욕실, 음파치유실에서 몸의 긴장을 풀었다. 몸이 편안해지면서 머릿속을 맴돌던 잡다한 걱정거리들도 눈 녹듯 사라졌다.

비슬산 산림치유센터는 3월부터 달성군시설관리공단으로 이관돼 정상 운영되는데,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며 이용료는 1만원으로 예정돼 있다. 지금은 시범운영 기간이어서 전화(053-659-4180)로 사전예약을 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오리엔테이션과 체험전 건강 체크를 한 후, 치유의 숲에서 개인별 그룹별로 알맞은 야외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건식반신욕실, 음파치유실, 명상치유실, 물치유실, 야외족욕탕 등을 갖춘 치유센터에서 실내프로그램을 체험한다. 프로그램 체험을 마친 뒤 건강체크를 해, 숲이 우리 몸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비슬산 산림치유센터와 치유의 숲은 평소 숲과 가까이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있다. 2층 건물임에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고, 숲길도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등 장애인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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