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깨달아 얻자 (自得)
스스로 깨달아 얻자 (自得)
  • 승인 2019.02.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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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전 중리초등 교장)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에서 제자들과 토론을 자주하였다. 같은 동향의 월천리에 사는 제자 조목(趙穆)은 재주가 뛰어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스승을 모시고 ‘대학’에 나오는 ‘심경’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데 의견이 일치하지 못했던듯하다. 제자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조목은 자기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굽혀 마음속에 담지 못했다.

스승에게 ‘한 방에 벗들이 모여 의심나는 것을 천 갈래로 분석했습니다. 잠자리를 찾아가는 새가 숲으로 가는 것은 새 스스로만 알뿐입니다.’라는 시를 지어 보냈다. 꼿꼿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자신을 새로 비유하였고, 결국 새가 잠자리를 찾았듯 자신의 분석이 귀결점에 일치한다는 뜻의 내용이다.

퇴계는 조목의 이 시를 받아보고 ‘마음을 비우고 이치대로 살펴보면 의심이 명료해진다. 지금 스스로만 안다고 억지로 주장하지 말게나.’라고 화답하는 시를 썼다. 어루만지듯 달래는 스승의 인자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을 ‘자득(自得)’이라 한다. 예로부터 학자들은 스스로 터득하는 공부를 중요시 하였다. 주자(朱子)도 자득이란 사색하여 그 이치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지 홀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사색으로 이치가 마음에 와 닿기 전에 자기만의 생각으로 추측하여 알고는 괜히 억지주장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사람일수록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명석한 두뇌를 가진 아이일수록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 수업시간에도 주의산만하다. 학습에 대한 흥미와 재미가 없다. 문제를 지레짐작이나 유추의 방법으로 그 사실에 대한 답을 척척 알아맞히기 때문이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

퇴계의 제자 조목(趙穆)도 다섯 살에 ‘대학’을 줄줄 외웠고, 열두 살에 경서를 모두 배웠을 만큼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성품 또한 대쪽같았던듯하다.

논어에는 ‘인(仁)’이라는 말이 106번 나온다. 공자는 제자들이 인(仁)을 질문할 때마다 설명을 다르게 했다. 제자들에게 능력별 개별화 하였던듯하다.

수제자라 일컫는 제자 안회의 ‘인(仁)이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에는 ‘자기 스스로를 이기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 가르쳤다. 실천사항으로 예의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의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의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며, 예의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 것을 강조했다.

제자 번지(樊遲)가 인(仁)을 세 번이나 물었다. 공자는 매번 다르게 대답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인(仁)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라 말했다. 후일 질문에는 ‘평시 일상생활을 할 때는 공손하고, 일을 처리할 때는 신중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중후해야 한다,’고 했다. 훗날 세 번째의 질문에는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이익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당시 사람들은 번지(樊遲)를 가리켜 끝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라 했다. 공자보다 36세 아래의 제자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다.

퇴계는 주자대전을 읽고 연구했다. 조선에 본격적인 주자학의 시대를 연 대학자이다. 퇴계의 저술에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요소들이 많다. 또한 퇴계가 쓴 시(詩)에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인간애가 물씬 풍긴다.

퇴계는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넓혔다. 즉 격물치지(格物致知)했다. 내적 수양으로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서 바르게 가졌고, 외적 수양으로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정확한 지식을 얻는 일에 힘썼다. 퇴계와 기대승의 논변이 그렇다.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가 그렇듯이 말이다.

대경예임회에서 얼마 전 경주 단석산에 갔다. 김대수 전 교육장이 지은 책 두 권을 차 안에서 나눠 주었다. ‘모든 삶의 조건이 숲에’라는 책이다. 그 책의 차례에는 ‘가장 중요한 삶의 조건 서열이 1, 2, 3, 4’로 제시되어 있다. 단연 1위는 공기이다. 그 다음이 순서대로 물, 흙, 햇빛이라고 한다. 오직 숲만이 공기, 물, 흙, 햇빛을 기름지게 할 수 있단다. 공자는 ‘썩은 나무는 다듬지를 못하고 썩은 흙으로는 담장을 흙손질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제자들에게 자득(自得)을 일깨운 퇴계는 숲이었다. 공기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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