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되어보니
환자가 되어보니
  • 승인 2019.03.03 2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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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대구시의사회 기획이사 든든한병원 원장)
“악!”

새하얀 눈 위에서 올겨울 첫 스키를 즐기고 마지막으로 내려오던 슬로프였다.

스키가 눈에 박히면서 왼쪽 무릎이 비틀려버렸다. 정말 1초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넘어지는 그 순간 바로 알았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에 후회가 밀려왔다. 나도 이제 40 중반에 접어든 나이를 잊은 채 너무 무리하게 스키를 탄 게 아닌가 하면서, 혹여라도 많이 다쳤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면서.

그냥 심하게 접지른 거라 위로하며 일어나보려 했지만 다리를 디딜 수가 없었다.

매번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이 다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려가던 다른 어떤 분이 도와주셔서 패트롤 카를 타고는 베이스까지 내려왔다. 의무실에 가서 간단한 처치를 했지만, 점점 다리가 부어오르고 통증도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3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대구로 내려와 검사를 했더니 역시나 골절이 있었다. 관절이 함몰되는 골절이라 수술도 꼭 해야 하는 상태였고 인대랑 근육 손상도 심해서 수술을 하더라도 3개월은 목발 신세를 져야 하는 상태였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하루에도 몇 명씩 다리를 다치고 골절이 되는 환자들을 보는 내가 직접 다쳐서 수술까지 해야한다니. 당장 진료를 어떻게 볼 것이며 내일도 수술이 예약되어 있던 환자들께 뭐라고 얘기를 해야할지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매일 하는 수술을 내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사실 겁도 약간 났고 수술 후에 재활을 할 걱정도 들었다. 당장 다리를 다치고 나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깁스를 한 다리가 맘대로 되지도 않았고 휠체어도 난생 처음 타는거라 익숙하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 늦게서야 수술실로 들어갔다. 실제로 침대에 누워서 수술실로 이동하는데 왜 그리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지. 수술을 마치고 몽롱하니 병실로 돌아오니 팔에는 링거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다리는 마취가 풀려가면서 점점 아파오는데 무통 주사를 아무리 눌러대도 아픈 게 해결이 안되었다. 밤새 30분 정도 잠을 잔 거 같다. 아내는 불편한 보호자 침대에서 내 간호를 하느라 같이 잠을 못 잤다.

의사가 되어 수술을 시작한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내가 직접 환자가 되고 수술을 받아보니 그동안 내가 환자들의 고통을 10분의 1도 몰랐구나 하는 반성이 되었다. 수술 전의 두려움, 수술실 가는 길에 느끼는 공포, 수술 후에 느끼는 통증, 가족들의 고충, 병실 생활의 불편감 등등.

그냥 너무 쉽게 환자들에게 수술을 설명하고 해 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휠체어 타기, 목발 짚기 같은 게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 세수를 한번 하려 해도 목발을 짚은 채로는 손이 자유롭지 않아 힘들었고, 침대에 오르내리는 것도 혼자서는 정말 힘들었다.

작은 턱만 있어도 휠체어가 걸려서 넘기 힘들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은 다닐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보는 대부분의 환자 분들도 나랑 같은 시간을 다 보냈으려니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도 쉽게 목발 짚고 다니시라고, 다리 디디지 마시라고, 계단도 연습하시면 하실 수 있다고 말을 해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2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는 수술은 못하지만 외래 진료는 시작을 했다. 2주를 기다려오신 환자분들게 일일이 감사의 마음을 다 전해드리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진료를 했다.

하루종일 앉아서 진료를 하니 집에 가면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고 밤에도 아파서 몇 번이나 깨면서도, 정형외과 의사로서 더욱 환자들에게 겸손하고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잘 이해하라고 주신 기회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진료를 했다.

몇몇 환자분들께는 제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고 사과도 드렸다.

이번에 다치면서 정말 느낀 것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의 장애우들에 대한 시설들이 얼마나 열약한지였다. 병원 시설은 그나마 편했지만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면 온통 힘든 것뿐이었다. 앞으로 정말 개선을 많이 해야할 것 같다.

다친지 벌써 2개월이 되었다. 이제는 목발 짚는 것도 너무 자연스럽고 깁스도 풀고 약간씩 디디기도 해서 처음보다는 훨씬 편해졌다. 조만간 수술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오늘도 엘리베이터에서 다치고 처음 진료보는 할머니께서 걱정스레 말씀하신다.

“아이고, 지는예 의사 선생님들은 안 다치는줄 알았으예. 많이 다쳤능교?”

“할머니, 이제 많이 나았어요. 의사도 사람이더라구요. 하하하.”

앞으로도 환자의 입장에서 더욱 생각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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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mile79 2019-03-05 07:30:17
"역지사지".. 환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게된 선생님께 빠른 쾌유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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