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임현오', 자작나무의 생명성, 부조회화로 구현
[서영옥이 만난 작가] '임현오', 자작나무의 생명성, 부조회화로 구현
  • 서영옥
  • 승인 2019.03.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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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 오브제로 입체감 극대화
허구·실재 공존시켜 변별력↑
자작나무그늘-내마음의풍경
임현오 작 ‘자작나무 그늘 - 내 마음의 풍경’

한편의 시집 같은 자연이다. 수 만점의 그림 같기도 하다. 구하는 자에게는 무한히 관대한 자연에게 마음 기대곤 한다. 우리가 느끼지 못했을 뿐 삶의 교훈에서부터 작은 그림의 소재에 이르기까지 발견하는 사람에게 자연은 한없이 열려있다. 임현오 작가에게는 자작나무가 그렇지 않을까 한다.

군집의 나무가 설원 같은 순백의 숲을 이루었다. 고요가 잠식한 숲이 아련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자작나무 숲이다. 생육하는 다른 종의 나무들과는 달리 자작나무는 만상의 근원 같은 흰색이 압권이다. 개별로 봐도 결이 곱지만 군락을 이룬 숲 통째의 이미지도 고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때문인지 숲 속에 들어서면 사유와 감성에 젖어들기 십상이다. 7년 전 작가 임현오가 자작나무에 매료된 이유이다.

미리 밝히지만 술이부작(述而不作)이다. 작가 임현오의 작품세계를 7년 전에 읽은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당시 작가는 자작나무에 천착해있었다. 7년 전처럼 지금도 자작나무를 캔버스 위에 잘라 붙이거나 편집하는 방식을 유지한다. 하여 7년 전 임현오의 전시에 부친 글의 일부를 살짝 견인하여 보탤까 한다.

“임현오의 근작은 회화부조(繪畵浮彫)이다. 아크릴 페인팅으로 드롱프뢰유(tromple-l′oeil, 눈속임 법)를 구사한 것은 지난 제작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작업은 고전주의식 회화기법과 캐스팅(Casting)에 오브제(objet)와 극사실 기법을 병행했다. 가끔은 설치와 페인팅이 믹스된 실험작도 선보였다. 알베르티(Leon Battaista Alberti 1404~1472)가 평면위에 3차원의 공간감을 깊이로 파고들었다면 임현오는 3차원적인 느낌을 돌출된 오브제(또는 마티에르)로 조형한다. 일루젼(Illusion)이라는 점에서는 두 경우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임현오의 회화는 요철 있는 부조형식을 띠어 부조회화라 이름 붙였다.” 임현오는 기법의 변용으로 지루할법한 평면화화를 입체적인 부조회화로 변모시켰다.

안동시에 자리한 임현오의 작업실에서 자작나무의 잔해와 눈이 마주쳤다. 한쪽 면 또는 양끝이 모두 잘려나간 바짝 마른 재목(材木)이 부서질 듯 처연하다. 온전한 제 모습과 생명력을 상실한 나무는 이제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발휘할 일만 남았다. 양지(陽地)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는 하얀 껍질이 발산하는 색깔 덕분에 정원수나 가로수로 활용된다. 임현오 작가가 이런 자작나무를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드로잉 재료로써 손색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작가는 앞서 나무의 일반적인 상징성에 먼저 주목한 듯하다. 지구에서 사람처럼 직립 생장하는 생명체인 나무는 신화나 설화, 종교에서 인간과 불가분한 관계로 회자된다.

성경에는 선악과나무와 포도나무 외에도 노아에게 마른 땅을 알려준 나뭇잎이 등장한다. 단군이 그 아래서 홍익인간의 대업을 실행했다는 ‘신단수(神檀樹)’와 석가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성수(聖樹)로 숭배되는 ‘보리수(菩提樹)’도 있다. 사람 곁을 지키는 나무를 우리는 사람처럼 여긴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품이 더해지는 나무는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을 주는가 하면 남편과 자식처럼 중요한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고, 벼슬의 품계를 받기도 한다. 감각을 지닌 나무는 인간과 교감도 한다. 하여 그늘과 산소를 제공해주는 나무가 풍성한 곳에서는 사람도 평화롭다. 작가 임현오는 나무의 일반적인 상징성 외에도 자작나무가 자웅동주(雌雄同住)라는 점에도 주목한다.
 

자작나무-아크릴2015
임현오 작 ‘자작나무-A fragment of life’

나무의 뿌리는 땅을, 줄기는 하늘을 향했다. 뿌리와 줄기기가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뻗어가는 나무는 바람이 불면 가지만 춤을 춘다. 바람 따라 도는 바람개비처럼 바람이 멈출 때 비로소 가지의 움직임도 멈추지만 엄밀히 말하면 뿌리와 가지는 처음부터 하나였다. 음과 양으로 나눠진 듯한 뿌리와 가지의 모태는 같다. 몸속의 핏줄(혈관)을 닮은 나무의 잔가지들은 그림과 실재에서 모두 동일하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그 생명줄 위로 파란 잎이 돋아날 것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나무에게 생명의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성장했다. 봄은 곧 생명이며 생명은 또 다른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나무가 품고 있는 근원과 생명력이야말로 작가 임현오가 강조하고 싶은 핵심 키워드이다. 그가 나무를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무의 일부분을 직접 잘라 붙이는 이유이다. 그것은 메말라 사라져버릴 생명을 기억하는 일이다. 보존하고 번식시켜 생명의 사막화를 막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임현오가 그리고 편집하는 ‘자작나무’는 되살아날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생에 관한 것이기에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이다.

서식지나 생태계를 차치하고라도 나무 한 그루가 갖는 의미와 차별화는 더 있다. 그중에서도 자작나무의 차별화는 흰색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를테면 성모마리아를 백합에 비유하는 것처럼 순결의 대명사로 각인된 흰색은 정결의 이미지를 상승시킨다. 정직한 메시지 외에도 보호와 순수, 계몽에도 잇닿는다. 꽃다운 신부를 위한 색으로 선택되어 왔던 흰색은 새 출발의 색이기도 하다. 반면 무채색에서 흰색은 모든 빛을 반사하여 생기를 밀어낸다. ‘백의민족’의 표상이며 고독과 공허를 의미한다. 그러나 흰색은 무채색 중에서 명도가 가장 높아 심리적으로는 감정을 밝혀주는 역할 담당으로 용이하다. 이러한 흰색은 어떤 색과도 잘 어울릴 뿐 아니라 그림에서는 바탕색으로서의 가치가 굳건하다. 임현오 작가가 자작나무 껍질의 흰색에 끌린 이유이다.

예술가의 자기결정권은 때론 모호한 회색이다. 그러나 흑백(黑白)의 논리가 명백하다고 하여 회색논리가 틀렸다고 단정 짓긴 어렵다. 하나의 예술 작품은 하나의 개성이자 작가의 성격이다. 작가 자신의 반영인 셈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예술가는 자기만의 고유한 시각과 기질로 그것을 창조해낸다. 작품 수만큼 다양한 정신세계가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서 초현실과 초자아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성과 진정성을 다져가는 작가들이 많다. 임현오라고 예외는 아니다. 가변적인 주제로 삶의 표면과 이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탐색해온 임현오의 예술에서 두 가지의 변별점이 포착된다. 그 중 하나는 ‘허구와 실재의 공존’이고, 다른 하나는 조각과 회화라는 두 장르가 결합된 ‘오브제 회화’라는 것이다.

임현오의 회화는 대중과 친밀해지려는 의도가 농후하지 않다. 유명인의 위업을 강조하기 위한 역사적인 과장과도 무관하다. 지나치게 미화된 몽상도 없다. 유행하는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화면을 채우지 않았고 잔재주와 기교로 멋을 부린 흔적도 없다. 대신 탄탄한 묘사력으로 삶의 의지를 조형한 그것이 일면 교훈적이다.

서정성을 자극하는 임현오의 회화는 경박하거나 무겁지 않다. 잘린 나무에서 번져오는 애잔함과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낭만은 삶을 포괄한다. 밀도감 있는 재현과 표현이 서로를 조밀하게 떠받쳐 완성도를 높여가는 임현오의 회화는 꾸준하고 성실한 작업 태도가 밑바탕이다. 작가에게 실험정신은 생명임과 동시에 일관되지 못한 예술관과도 연결된다. 충고나 질타 경탄과 찬사도 주변의 말들일 뿐. 작가는 자신의 의지대로 예술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그 나머지는 관람자들의 몫이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임현오
 
△임현오= 국립안동대학교 미술학과(서양화전공)와 계명대학교대학원 회화과 졸업했다. 대관개인전 9회, 부스개인전 1회, 초대개인전 3회, 단체전 100여회를 열었다. 현재 한국미협, 심현회, 신세기청년작가회, 영남구상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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