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딱 맞는 떡이 있나요”
“입에 딱 맞는 떡이 있나요”
  • 승인 2019.03.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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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 결혼정보 대표ㆍ교육학박사
계절의 여왕인 봄이 오나보다. 좋은 소식이 자주 들린다. 상견례 소식도 들리고, 결혼식을 알리는 모바일 초대장이 청아한 알림 소리와 함께 카톡으로 날아 온다.

몇 달 전 일이다. 서른 하고도 다섯 해가 훌쩍 넘은 딸을 둔 부모님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재산이 수백억대가 되는 부잣집이다. 좋은 조건을 가진 신랑감을 물색하기 위해 인터넷에 올라온 결혼정보회사는 다 검색해서 맞선을 수없이 봤지만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신랑의 학벌·직업·키·외모 등은 물론이고 사돈이 될 상대 부모님의 재력도 비슷해야 되는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딸은 혼기가 가득 찬 나이 외에는 신붓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얼굴도 예쁘고, 신부수업도 알차게 한 교양 있는 여성이다. 근데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신랑감이 없어서 부모님 애간장을 녹이고 있었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면서도 적당한 배필을 못 찾은 이유를 분석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했다. 나름 전문가 입장에서 판단해보니, 딸도 신랑감을 꼼꼼히 찾는 편이었고, 막상 좋은 사람을 만나도 상대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부모님이 원하는 조건에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그녀도 만남을 거부했다.

부모님의 사위에 대한 기대치와 그녀의 결정 장애가 문제였다. 그녀는 가슴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머리로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준수한 외모에 키는 본인보다 십 센티 이상 커야 되고, 부모님의 재력에 학벌도 최상급, 직업도 최상급, 성격도 남자다워야 한다. 소위 말하는 산 좋고 정자 좋고 물 좋은 완벽한 절경을 찾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최상의 스펙을 갖춘 남자는 역시 그녀와 똑같은 조건을 원했다. 똑같은 조건에 더 나이가 어리고 예쁜 여성을 찾는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평가하니 결혼이 성사될 리 만무하다. 어차피 중매로 사람을 찾으려면 과감하게 한두 가지 중요하지 않은 조건을 포기하라고 했다. 학력을 포기하고 직업을 우선으로 하든지. 외모를 포기하고 성격을 선택하든지, 키를 포기하고 나이를 선택하라고 진지하게 충고했다.

키는 좀 작지만 동갑내기의 그녀가 원하는 조건의 남성을 소개했다. 그런데 만난 지 석 달만에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상견례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입에 맞는 떡이 있습니까? 키가 좀 작은 게 흠이지만, 키 크고 비실비실한 남자보다 당차고 야무진 사람이 훨씬 낫지요. 딸아이가 나이가 많다 보니 이제까지 나이 든 총각들을 많이 봤는데, 동갑이라 그런지 서로 장난도 치고 하는 모습을 보니 딸아이도 좋은가 봐요.”라면서 결혼 날짜 정해지는 대로 인사하러 오시겠다고 했다.

결혼은 인생의 가장 위대한 비즈니스다. 조건이라는 자신만의 프레임에 갇혀 좋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과한 욕심을 버리고 조건을 좀 더 융통성 있게 조절하니 좀체 풀리지 않던 매듭도 술술 풀리게 되는 것이다. 굳게 닫힌 창 안에서는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남녀가 배우자를 찾는 방법으로 모 결혼정보회사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남성은 운명적인 만남을 선호했다. 단체모임의 활동이나 여행 중에 자연스럽게 만난 인연을 원했다. 하지만 여성은 대부분 조건적인 만남을 선호하였다. 운명적인 만남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지인이나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검증된 만남으로 실리적인 면을 중시했다. 사랑과 조건이 다 충족되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정말 입에 딱 맞는 떡이 있을까요? 결혼은 현실이니까 무조건 사랑 하나만으로 결혼하는 것도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꿈과 희망을 가꾸어가는 배우자라면 사랑이 조건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해본다.

결혼할 상대를 찾고 있는 청춘남녀들에게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봄을 그대에게’를 선물하고 싶다. 이 봄에 그대들이 가슴 뛰는 사랑을 만나서 후회 없는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갖가지의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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