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詩 ‘정거장에서의 충고’에 배인 정서
기형도의 詩 ‘정거장에서의 충고’에 배인 정서
  • 김광재
  • 승인 2019.03.1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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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한 듯 보이는 詩 마지막 행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절망의 자리서 의지를 다지며
첫 행처럼 ‘희망을 노래’한 셈

 

기형도(1960~1989)
기형도(1960~1989)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다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전문 

 

기형도 문학관 전면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에 대해 노래하련다”라고 쓰인 대형펼침막이 걸려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정거장에서의 충고」 첫 행이다. 기형도는 문학과지성사로부터 시집 출간 제의를 받고, 시집 제목으로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시집은 유고시집이 되면서, 시집 해설을 쓴 김현이 정한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출간됐다.

기형도가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시집 제목으로 생각한 것은 제목 자체의 뉘앙스도 있었겠지만, 그 시가 가지는 의미도 고려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로 끝나는 이 작품은 절망적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그렇다면 첫 행에서 말한 ‘희망’은 단지 절망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일까.

이 작품은 「가는 비 온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 등과 함께 ‘문학과 사회’ 1988년 겨울호에 발표됐다. 그해 여름 휴가 때에 그는 대구, 전주, 광주, 순천, 부산을 거치는 3박4일 간의 여행을 하면서 노트에 「짧은 여행의 기록」을 남기는데, 그 속에 「정거장에서의 충고」와 관계지어 읽어볼 만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대구는 나에게 대통령을 뽑은 무서운 도시, 시인들만 우글거리는 신비한 도시”로 “이성복, 이하석, 이태수, 장정일, 구광본, 그리고 김춘수, 한때의 이문열, 그리고 작가 (강)석경이 고향”이라고 썼다. 그는 대구로 와서 ‘장정일이라는 이상한 소년’(소년이라고 했지만 장정일은 기형도보다 겨우 두 살 아래다. 그의 악동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을 만나고 다음 날 소설가 강석경을 찾아 전주 서고사로 간다.

서고사에서 쏟아지는 별 속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광주로 가 망월동 묘지로 간다. 돌아오는 길 봉고차에서 연세대 후배이기도 한 이한열의 어머니를 만난다. 그는 광주를 떠나 무진기행의 무대인 순천으로 갔다가 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해운대에서 “아무런 목적도, 즐거움도, 그리움도 없이 걷”다가 서울로 돌아온다. 특별한 목적이나 뚜렷한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떠돌아다닌 여행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사실 이번 휴가의 목적은 있다. 그것을 나는 편의상 ‘희망’이라고 부를 것이다. 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나는 모든 것이 권태롭다. 차라니 나는 내가 철저히 파멸하고 망가져버리는 상태까지 가고 싶었다.”

“비가 왔으면 싶다. 희망은 있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 도저한 삶과 삶들, 이해할 수 없는 저 사람들은 오래 전에 나에겐 부재(不在)했을 것이다. 나에게 지금 희망은 어떤 모습일까? 한때 나는 그것을 문학이라고 생각하였다. 한때라니? 그랬다. 나는 더 이상 시에 접근하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안다.
시는 어쨌든 욕망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 욕망이 사라졌다. 그건 성(聖)도 아니다. 추악하고 덧없는 생존이다. 어쨌든 나는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탈출 위에 있다. 나는 부닥칠 것이다. 공허와 권태뿐일 것이다. 지치고 지쳐서 돌아오리라.”

“노트를 펼치다가 놀랐다. 표지에 HOPE라고 씌어 있었다. 내 여행이 ‘지칠 때까지 희망을 꿈꾸기’ 위해서였다면 이 노트 또한 내 의지를 돕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죄인이다. (중략) 서울에서의 나의 행복론은 산산조각 나고 있다. 내가 거듭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들은 1988년 여름 그가 간절하게 ‘희망’을 갈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희망은 자신의 변화를 통해 가능한 것임을 절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심 많은” 그의 내면에는 “불안의 짐짝들”이 희망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에게 희망이 찾아올 때마다 불안은 그것이 정말로 네가 갈 길이냐고, 스스로를 속이는 거 아니냐고 속삭여왔음을 암시한다.

이제 그는 짐짝처럼 거추장스럽고 오래된 불안을 내던질 방법은 (흉기처럼 단단한) 혀나 (딱딱한) 손 즉, 말과 글이 아니라 몸과 행동에서 나오는 것임을 안다. 그러나 그는 육체가 벌써 누추해졌다고 느끼며 급기야 불안의 짐짝들에게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자포자기에 빠진다. 정거장에 주저앉아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라고 중얼거린다. 모든 길이 있으나 아무 길도 선택할 수 없는 그는 욕망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회피하려 한다. 랑을 방 안에 가둠으로써 욕망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그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희망이란 말을 꺼내려면 "미안하지만"이라는 사과 혹은 양해를 구하는 말을 앞세워야 한다. 그래서 첫 구절은 너무 노랫동안 절망만을 오래해온 자의 전향서 첫 구절처럼 들린다. 오랜 절망은 희망이 다가올 때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절망은 우선 중학교 때 겪은 누이의 끔찍한 죽음 때문일 것이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 그 사건 때문이었다는 증언이 사실이라면, 그의 시는 절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니 희망으로 전향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그가 써온 시에 대해 '미안한'일처럼 느껴질 것이다.

또 하나는 80년대의 청춘들에게 공통적인,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그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짧은 여행의 기록에서 "망월동 공원 묘지 제3묘원은 찌는 듯이 무더웠고 그것은 고의적인 형벌 같았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광주를 떠나며 "나는 무엇인가. 가증스러운 냉담자인가, 나에게 있어 국토란 무엇인가. 내가 탐닉해온 것은 육체 없는 유령의 자유로움이었다."라고 내뱉는다. 

희망을 노래하겠다고 시작한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절망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라는 진술은 표면적으로는 항복선언이지만, 동시에 다른 전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싸움을 시작한다는 선전포고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희망을 찾기 위한, 시에 다시 다가서기 위한 몸부림의 기록인 「짧은 여행의 기록」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스스로 변화하기. 얼마나 통속적인 의지인가. 그러나 통속의 힘에서 출발하지 않는 자기 구원이란 없다. 나는 신(神)이 아니다. (중략) 흘러가버린 나날들에게 전하리라. 내 뿌리 없는 믿음들이 지금 어느 곳에서 떠다니고 있는가를.”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겪은 시인이 80년대의, 자신의 20대의, 고갯마루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방향을 감지했던 것 같다. 그가 참여시(혹은 민중시)와 순수시를 아우르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밝힌 글이나,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남긴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라는 말도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어가려는 희망을 내비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하늘은 그에게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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