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 그를 느끼다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 그를 느끼다
  • 승인 2019.03.1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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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지난 2월에 일본의 천년고도 교토로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여행중 청수사, 금각사 등의 널리 알려진 명소를 관광하는 경로에서 잠시 이탈하여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에 들렀다. 동지사 대학은1875년에 일본의 6대 교육자중의 한명인 니지마 조가 세운 동지사 영어학교가 전신이며 현재 일본의 3대 사학(私學) 명문으로 손꼽힌다. 아름드리 고목의 그늘에서 고풍스런 학교 건물을 감상하는 캠퍼스 투어도 괜찮은 관광이 되겠지만 이곳을 찾은 목적은 따로 있었다.

학교 서문(西門)으로 들어서서 멋스러운 교정을 감상하며 조금 올라가다가 좌측으로 꺾으면 까만 대리석 시비가 보인다. 거기, 삶 자체가 하나의 하늘이요 별이었던 윤동주 시인이 그에게 바쳐진 많은 꽃다발에 둘러싸인 채 돌비석으로 말없이 서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향수’로 유명한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두 시인이 일제 강점기때 이 학교에 유학하였던 바를 기려 동지사대학 코리안 클럽에서 1995년과 2005년에 두 시비를 건립하였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에는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序詩)’가, 정지용 시인의 시비에는 교토시내를 흐르는 카모강을 노래한 ‘압천(鴨川)’이란 시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평소 좋아하는 저항시인 윤동주, 그가 공부하던 곳, 숨 쉬던 곳을 보고 그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고 싶어 짬을 내어 방문을 계획하였다. 그가 살던 하숙집 자리에 세워진 교토조형예술대학 다카하라(高原) 교정 들머리에도 시비가 있고 소풍삼아 나들이 다니던 우지(宇治)의 강가에도 그의 시 ‘새로운 길’이 새겨진 시비가 있으나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교토시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기도 했지만, 노래로도 불려진 ‘향수’로 유명한 정지용의 시비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를 통해 윤동주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했고 정지용 시인은 그 시절은 왜 그렇게 가혹했는지 십리벌에 물어 목소리가 자졌다. 암울한 일제 강점기하에서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운명과 맞서서 절망을 극복하려는 자기 구원의 노래인 서시와 조국을 떠나와 타국 땅에서 메마른 강을 읊은 나그네의 시, 압천을 번갈아 읽으니 나라를 빼앗긴 채 일본 땅에 와서 고독하고 외로웠을 그리고 암담했을 두 시인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추모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한참 동안 상념에 빠져 두 시인의 어려웠던 삶을 그려보다가 문득 현재의 우리 사회를 떠올려 보았다.

나라를 되찾은 후 각고의 노력으로 고도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룩했음은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이지만, 청년들은 취직난과 불투명한 미래에 고민하고 장년층은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신음하는 힘든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우리 의료계 또한 유래 없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눈만 뜨면 마구잡이로 생겨나는 수많은 규제와 문케어 등의 인기 영합적인 의료 법안, 끝날 기미가 없는 저수가 정책 등의 어두운 현실 하에서 강북삼성병원 정신과의 고(故) 임세원 선생님, 중앙응급의료센터장, 고(故) 윤한덕 선생님 등 무고한 희생만 늘어가고….

대동아전쟁의 광풍이 한창이었던 시대, 일본의 심장인 교토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신께 조국의 광복을 빌었던 윤동주 시인의 기도는 모두가 정당한 대가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갈망하는 우리들의 외침과 닮아 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하에서 윤동주 시인은 항일의 의지를 시로 표현하였지만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할까.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난다. 확고하면서도 신념에 찬 결의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흔들림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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