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스', 세계를 혼돈에 빠뜨린 권력자의 실체
영화 '바이스', 세계를 혼돈에 빠뜨린 권력자의 실체
  • 배수경
  • 승인 2019.04.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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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부시 행정부 시절 부통령 일대기 그린 ‘바이스’
이라크전 주도한 ‘딕 체니’ 실화
‘VICE’ 제목 중의적 의미 담아
그의 권력이 ‘악덕’임을 암시
페이크엔딩 등 독특한 연출력
체중 20㎏ 불린 주연 열연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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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체니로 분한 크리스천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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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 스틸컷

‘이것은 실화다. 그는 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권력자였으므로 혹은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 ‘바이스’는 시작된다.

이어 누군지도 모를 만취한 운전자가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과 2001년 9월 11일 백악관 지하벙커의 긴박한 모습이 뒤따른다. 테러에 의해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리고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받는 순간, ‘위협으로 판단되는 항공기는 격추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당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크리스천 베일)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만취운전자와 부통령은 동일인물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한 사람의 가장 바닥이었던 순간과 권력의 절정에 선 순간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밥 버러지 백수’로 이름없이 사라질 뻔 했던 그가 어떻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되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드라마틱한 변화의 뒤에는 아내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가 있었다.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명문대생도, 사장도, 시장도’ 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뤄줄 남편이 필요했다. 아내의 호소에 정신을 차린 그는 국회 인턴으로 시작해 백악관 최연소 수석보좌관에 임명되는 등 승승장구를 한다. 대권도전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즈음 딕 체니는 동성애자인 딸을 지키기 위해 정계은퇴를 결심한다. 대권보다는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여지는 순간이다. ‘체니 가족은 정계를 떠나 다시는 대중 앞에 서지 않았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암전,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순간이 지나면 요란한 전화벨 소리와 함께 마치 새로운 이야기인 듯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 페이크 엔딩(Fake Ending)을 통해 ‘그가 정계은퇴 후 조용히 살았더라면 세계사의 흐름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감독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부시의 농장에서 부통령직을 수락하는 순간 그는 존재감 없는 부통령(영화 속 표현을 빌면 ’대통령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자리’)이 아닌 권력의 중심부에 선 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낸다. 이 순간을 낚시와 대비시켜 부시가 미끼에 걸렸음을 암시하는 장면은 절묘하다. 영화 속에는 군데군데 아담 멕케이 감독의 독특한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이 많다. 물론 이런 장면들이 장난스럽고 가볍게 느껴져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가 권력을 향해 나가는 모습은 커피잔과 컵받침을 쌓아올리는 위태로운 모습으로 묘사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그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근거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세계평화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이라크 전을 일으킨다. 그들에게는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의 관심을 돌릴 무언가가 필요했을뿐. 그 결정의 이면에는 딕 체니가 있었다.

‘바이스’는 권력을 등에 업은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들이 내건 명분에 의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사과하지 않겠다. 당신들은 투표로 날 선택했고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는 그의 모습 역시 전혀 낯설지가 않다.

이쯤되면 영화 제목이 ‘바이스’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누군가를 대리하는 2인자로서의 부통령(vice president)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권력은 악(vice)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하고.

비록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은 되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위해 20kg 가까이 몸을 불리고 딕 체니로 변신한 크리스천 베일을 보면 그가 왜 대단한 배우인지 알 수 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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