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를 묻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를 묻다
  • 승인 2019.04.2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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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아이꿈터아동병원 진료부장,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얼마 전 정부는 올해 10월부터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지난 4월 8일부터 ‘한방 추나(推拿)요법’을 건강보험에 적용한다는 발표에 이어 또 다른 한방 보장성 강화 정책을 천명한 것이다. 정부는 이미 2017년 한방 추나요법 시범사업에 수 천 억원을 소요했으며, 올해 10월부터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또 다시 수 천 억원을 투입할 기세이다.

2017년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미명하에 시행된 ‘문재인 케어(이하 문케어)’에 이어 한방 보장성 강화 정책을 정부가 추진한다고 하니 국민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수급자(환자)에겐 저부담(의료 혜택에 비해 낮은 보험료 부담), 공급자(의사)에겐 저수가(의료행위에 대해 원가보다 낮은 가격을 산정하여 지급) 정책을 유지한 덕분에,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의료천국이 되어 있다(물론 많은 부작용이 있지만). 여기서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적은 본인 부담금으로 치료 받을 수 있고(문케어), 덤으로 낮은 가격에 한방치료를 경험하게 해 준다니(한방 보장성 강화 정책), 이 얼마나 훌륭한 정부인가? 정말이지 두 정책 모두 아무 문제없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다. 위의 정책들이 실패한다는 슬픈 예감 말이다.

우선 두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재정이다. 문케어 시행 전 수 년 동안 의료보험 재정이 흑자였다 하더라도 정부는 미래 의료 환경(저출산으로 인한 재정수입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지출 증가 등)을 고려하여 합리적 지출을 해야 했다. 몇 년 간의 돈 잔치로 국민은 잠시 행복(?)할 수 있지만, 수 년 뒤의 대한민국 상황이 베네수엘라(정치권의 선심성 무상 복지정책으로 재정이 붕괴되어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음)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없던 혜택을 주려면 더 많은 돈(세금이나 보험료)을 내야한다는 사실도 국민에게 상기시켜줘야 했다. 문케어를 시행한 지 1년 남짓 된 2018년 건강보험재정수지는 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1779 억원)로 돌아섰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이 적자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한방 보장성 강화 정책도 문제이다. 과학의 한 분야인 현대의학은 근거 중심의 학문이며, 진단이나 치료에 대해 수 십 년간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과 체계적 문헌 고찰을 통해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지금 이 순간에도 현대의학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의학은 현대의학과 같은 발전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한의학에서 행해지는 진단이나 치료가 여러 연구를 통해 안정성과 효과를 스스로 입증하지 못함으로써 현대의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의사가 손 또는 신체의 일부분으로 관절, 근육, 인대 및 신경체계를 조절하는 한방 수기요법(手技療法)인 추나요법과 여러 한약재를 섞어 탕약(우림약) 형태로 만들어 한방에서 처방되고 있는 첩약은 현대의학 관점에선 안정성과 효과가 불분명한 사례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한방 보장성 강화 정책을 선택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지금 당장 국민에게 절실한 필수의료정책(응급·외상·심뇌혈관정책, 중환자실정책, 공공의료정책 등)에 대한 지원을 외면한 채, 엉뚱한 곳에 국민혈세를 쏟아 부으려는 의도가 도대체 무엇인지 정부에게 묻고 싶다.

한의학은 지금의 발전된 현대의학을 상상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과거의 의학이다. 물론 사람들은 디지털시대를 살면서 가끔씩 아날로그시대의 감성을 소환하곤 한다. 하지만 국민 건강에 대해서 아날로그 시대를 추억하며 감성에 빠져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굳이 아날로그시대의 의학인 한의학을 체험하고 싶다면, 박물관이나 도서관 한편에 한의학 자료를 놔두고, 하나의 사료(史料)로 찾아보는 것이 2019년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의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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