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소통으로 위협받는 民主主義
코드소통으로 위협받는 民主主義
  • 승인 2019.04.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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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아(이학박사, 전 대구시의원)

필자는 칼럼을 쓸 때는 최대한 정치색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대한민국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데 있어 가장 민감한 몇 가지가 아마 정치, 종교, 지역, 젠더 등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양한 관점을 가진 모든 독자의 목소리와 일치할 수는 없더라도 최대한 조화로울 수 있도록 저 영역들은 되도록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선 헌재재판관과 관련해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어 이러한 내면의 룰을 깨고자 한다.

현정부는 소통의 정부임을 가장 내세운다. 그도 그럴 것이 탄핵의 촛불로 지금의 자리에 온 정부이기에 프레임 자체가 '낮춘, 소통하는, 공감하는' 식의 이미지를 만들어 그러한 태도로 지난 어떤 정부들보다 감성적으로 sns를 활발하게 운영하고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민 1인의 모든 의견이 최고의 고견이라 여기고 있는 정부라는 인상을 심어주려 정말 노력한다.

그러나 현정부의 소통은 명백히 '코드소통', 즉 제한적 소통이다.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만 소통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불통보다 더 무섭다. 코드소통은 코드가 맞지 않은 사람들의 의견은 불통보다 더한, 애초에 존재조차 없었던 것으로 취급한다. 동시에 정부의 코드와 일치하면 국민 다수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수차례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그 이의는 존재조차 없던 것이 된다.

현정부는 모든 국민과 모든 정당과 소통하는 정부라는 철저한 이미지메이킹 뒤에서는 청와대가 소통하는 것은 '완벽하게 우리 코드에 맞는 사람들' 에 한해서라는 식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역대 정권들도 다 코드소통이었다고 할 텐데 적어도 지금 정부처럼 국민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거짓된 이미지를 교묘히 만들지는 않았다. 이렇게 심겨진 거짓된 이미지는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현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스스로를 역적처럼 느끼게 만든다. 정말 무섭지 않은가.

사실 각 부처의 장관 자리에 대한 청와대의 국회청문회 묵살은 만 번쯤 양보하여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흠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헌법재판관은 다르다. 한 사람 앉혀두고 모두가 돌아가며 소리 지르고 당사자는 고개 숙이고 있어서 모든 인사청문회가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할 수 있겠지만 헌법재판관은 보통의 각료와는 차원이 다른 자리이다. 헌법재판관은 가장 청렴해야 하는 사법기관의 수장으로 그야말로 무결한 사람을 위한 자리다. 그렇기에 이번 임명은 필자같은 무지랭이에게도 경악스럽다.

최초의 이미선 헌재재판관 후보 임명과 관련한 여론조사는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장관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임명에 실패한 청와대는 인사검증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대신 3패가 될 수는 없다는 절박함에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하였다. 이로써 사법부가 정부의 코드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분명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9명 중 6명이 현정부의 코드와 일치한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도 탄핵시키는 자리이고 그렇기에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구성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다. 정부 코드에 반대하는 사람을 임명하라는 것이 아니다. 누가 보아도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모두에게서 얻을 수 있는 법조인을 임명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긴 제한적 소통의 현정부에게 중립은 또 다른 코드불일치이긴 하겠다.

남편이 주식매매를 다 했고 본인은 주식과 관련해서는 어플조차 할 줄 모른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관련 기업을 본인이 버젓이 재판하고서도 어떻게 그런 말을 부부가 합동해서 태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놀랍다. 이쯤 되면 국민을 바보로 아나 싶어진다. 필자는 이재판관의 남편이 한 방송에서 이럴 줄 알았으면 35억짜리 아파트나 사둘 걸 그랬다는 식의 말을 한 것을 들었는데 순간 귀를 의심했다. 주식 아니면 부동산투기, 결국 돈을 쫓겠다는 것으로 들리는 것은 결코 내 귀가 이상한 것일까. 필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결해야 하는 자리가 사법부, 거기서도 헌재재판관이 최고 중의 최고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의심받는 위치에서 시작한 것 자체가 이미 부적격이고 그 의심이 합리적 의심이라면 더더욱 부적격이라 생각한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2018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서 대한민국은 100점 만점에 57점, 조사대상국 180개국 중 45위이다. 약간의 상승으로 현정부는 자축할지 몰라도 거기서 지적된 '사법부, 사회 지도층 등이 연루된 권력형 부패'의 쓴소리는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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