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죄 (인생은 아름다워라)
기억의 죄 (인생은 아름다워라)
  • 승인 2019.04.2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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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동산병원 신경과 교수)
얼마전 근무하는 병원이 이전을 하여 새로운 곳에서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병원 이전 후 친구들과의 대화는, 새병원에서의 많은 장점도 화두가 되지만, 출퇴근 시간이 늘었다는 등의 물리적 단점과 직원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단점들이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화는 ‘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이전하기 전이 훨씬 좋았던 것 같다’ 로 매듭지어질 때가 많다. 참 이상한 일이다. 친구가 좋았다고 하는 그때의 상황, 불만을 토로하던 그 친구의 표정과 불만의 내용까지 명확히 기억나는데, 친구는 지금에 와서 그 때는 좋았다고 한다. 현재가 불만을 토로하던 그 당시보다 확연히 나쁜 것일까.

인간에 있어서 뭔가를 기억해낸다는 것은 실존하는 사건이나 물체 자체에 대한 기억을 넘어서서 그 기억에 대한 이해까지 포함함을 의미한다. 정확히 저장하고 복원에 머무르는 기계의 기억과 다른 점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기억은 편집되고, 재구성되고 심지어 왜곡되기까지 한다.

Schacter는 자신의 저서 ‘기억의 일곱가지 죄 (seven sins of memory)’ 에서 인간의 기억의 속성 및 오류를 ‘죄’라는 제목 하에 설명하였다, 그 중 편향(bias)의 죄가 이 친구에게 해당되는 것 같다. 현재의 지식이나 믿음 혹은 상태가 기억에 왜곡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현재 혹은 직전의 경험이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과거의 사건을 변형시키고 재해석하여 달라진 기억으로 등장시키게 된다. 여기에 자기 중심적 편향(ego-centric bias)이 개입될 때 과거는 실제보다 더 윤색되어 아름다워진다. ‘구관이 명관이다’ 라는 우리 옛말의 과학적 근거가 되는 셈이다. 즉 해야할 일이 많아 바쁜,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이 과거의 비슷한 상황에 대한 기억에 영향을 미쳐서, 이전하기 전의 병원에서는 좋았노라고 되뇌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중심적 편향이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반드시 과거와 현재의 사건에 국한되는 개념은 아니다.

어떤 사건을 자기 중심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남의 일은 쉬워보이고 좋아보이는 반면, 자신의 일은 힘들고 나빠보이는 하는 현상으로, 남의 떡을 더 크게 보이게도 한다.

반대로 자신의 성취물은 나의 많은 노력의 댓가인 대단한 것, 괜찮은 것이고 상대의 성취는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도 하는 이중잣대의 시작이다. 이중잣대라는 기억의 윤색이 정도를 넘어 기괴한 모습의 잘못된 믿음으로 변화할 때 망상이라고 부른다. 편향의 죄 중 자기위주편향(self-serving bias)가 개입하면 윤색된 기억에 곁들여 남탓을 하기 시작한다. 분쟁의 시작이 다가온 듯 하여 아슬아슬해진다.

진료실을 찾는 치매환자의 보호자들 중, 사실과 다른 얘기를 사실이라고 믿고 얘기하고, 발생하는 문제의 화살을 보호자에게 돌리는 통에 힘들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 환자는 요즘 식욕이 저하되어 있을 수도 있다. 환자는 과거에 간병인이 식사를 정성껏 차려준 기억을 왜곡하여 떠올리며, 간병인이 예전부터 밥을 주지 않아 자신이 이렇게 이렇게 말라가고 건강이 안 좋다고 할른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웃이 자신의 간병인을 부추기고 있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환자가 나쁜 사람이라서라기보다는 치매라는 병에 의한 기억의 망가짐과, 기억이 가진 태생적인 죄 때문이라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면 기억이 가진 죄는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이중잣대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는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 정책 발의현장에서, 정치권의 이중잣대를 본다. 재벌의 갑질을 욕하면서 자신의 상점을 찾는 고객에게 또다른 갑이 되고 있는 사회속의 이중잣대를 본다.

기억을 재해석하고 윤색하는 것은 인간의 기억만이 가진, 기계와 다른 인지과정이고 나의 판단이 가미된 기억을 바탕으로 한 나의 잣대로 사람을, 과정을 평가한다. 그러나, 또한번 윤색을 가미하여 내 잣대가 틀렸음을, 이중 잣대임을 인정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과정일 것이다. .

기억이란 단어가 가진 태생적인 일곱가지 죄가 개인적, 사회적으로 편협한 상황을 만들수도 있지만, 자신의 판단을 수정, 발전하는 방향으로 반전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게 생을 살아갈 만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친구가 예전에는 모든게 좋았다고 얘기할 때, 기억이 가진 죄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단죄하고 바로잡으러 하기보다 ‘이 친구가 지금 힘들구나’ 생각하고 따뜻하게 웃어줄 수 있는, 인생은 아직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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