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기레기
  • 승인 2019.05.2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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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기레기.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다.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에서 허위 사실과 과장된 부풀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과 그 사회적 현상을 지칭한다고 위키백과에 나와 있다. 한 마디로 기자 본연의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주관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이를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일컫는 호칭이다.

기레기가 되지않기 위해 기자가 쓰거나 취재하는 기사를 꼭 독자들의 입맛에 맞춰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독자가 아니라 취재원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국민들을 대신해 궁금한 것을 파헤치고, 또 취재원에게 물어보고 하는 그런 것이 기자의 취재 행위라면 취재원은 불편해 하기 마련이다. 진실은 장막으로 가려진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기자는 그 진실을 알기 위해 이렇게도 물어보고 저렇게도 뒤집어 본다. 좀 성가시다 여겨질 정도로 사방팔방 짚어봐도 진실의 얘기는 좀체 나오지 않는다. 그러고도 팩트에 충실한, 이익관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기사를 만들기 위해 기자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마련이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일을 물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질문은 살아있어야 한다. 여기서 살아있다는 표현은 ‘정말로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것’이란 얘기다. 그런데 살아있는 질문이 아니라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죽은 질문밖에 하지 않는다면 그 기자가 기레기인 것이다.

사실 ‘살아있는 질문’을 인터뷰이의 면전에서 넉살좋게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종종 그런 유형의 질문은 인터뷰이가 가장 대답하기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어인 기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차마 ‘살아있는 질문’을 꺼내지 못한다. 그저 인터뷰이의 기분을 맞출 수 있는 적절한 질문만 한다. 적확히, 그 기자가 바로 기레기다.

시간은 좀 지났지만 대통령을 인터뷰 한 공영방송사의 한 기자를 두고 세간에 말이 많았다. ‘인터뷰이의 말을 끊었고, 야당의 주장을 인용한 독재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대통령을 인터뷰 하는 표정이 영 아니었다’는 얘기들이 무섭게 나돌았다. 대통령에게 무례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웃기는 반응이 아닐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터뷰이가 질문의 핵심을 비껴난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으면 그 말은 당연히 기술적으로 끊어야 생산적이다. 야당 역시 대한민국을 이루는 한 축일진대 그들의 표현에 대해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때 인터뷰어의 표정이 진지한 것은 더더욱 당연하다. 거친 질문이 꼭 무례한 것은 아니다. 최대권력에게 끊임없이 질문의 압박을 하는 것, 그게 권력의 독재를 막기 위한 사명이 아닌가. 그런데 왜 기레기인가.

대구시장을 예로 들자. 항간에 ‘공항이전’ 이라는 명제가 지역의 큰 화두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대구시의 방침은 굳어져 있다. 그런데 그 방침이 대다수 시민들이 제대로 알고 원하는 쪽인지 그 반대쪽인지는 불명확하다. 시민들 중엔 시의 정해진 방침이 틀리다고 주장하는 말들도 무성하다. 이런 경우 시의 방침만 계속 확인하는 게 쓰레기 질문인가, 아니면 시민들을 대신해 반대 측의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는 게 더 쓰레기 질문인가. 대구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을 쓰레기 질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비록 인터뷰이가 자신의 신념을 공격하는 질문으로 여길지라도 팩트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살아있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직설적이고 비판적인 살아있는 질문에 대해 ‘부적절한 질문’이라며 인상을 구기는 인터뷰이가 만일 있다면 그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거꾸로 살고있는 셈이 된다. 북한 같은 왕조사회, 혹은 독재군주 시대라면 모를까….

대구시민들의 대의기관인 대구시의회가 시민들의 의견은 도외시 한 채 집행부인 대구시의 시책만을 아 특위를 만들었다면, 그것 역시 꼭 따져야 한다. 왜 이런 특위냐고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따지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다면 저널리스트로서 그게 더 문제다. 집행부 입장만 견지하는 특위라면, 시민들의 소중한 의견들을 귀기울여 수렴해 의정활동에 반영하고 집행부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의회가 그렇다면 왜 그런가 하고 질문을 하는게 맞다고 본다.

“기자들에게 부적절한 질문이란 없다”고 얘기한 미국의 어느 대기자의 말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고분고분 착한 질문만 하는 기자가 기레기인가, 국민이 원하는 질문을 제대로 한 기자가 기레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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