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악인이 없어도 공생없는 비극은 굴러간다
'기생충', 악인이 없어도 공생없는 비극은 굴러간다
  • 배수경
  • 승인 2019.05.3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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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
코미디·공포… 장르 넘나들며
두 가족간의 예측 불가 전개에
2시간 넘는 러닝타임 체감 못 해
대비 장치로 계단과 빛 활용해
암울한 세상 상징적으로 표현
넘어서는 안되는 어떠한 선에
순간순간 느끼는 묘한 긴장감
기생충-2칼라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이 드디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 역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껏 높아진 기대감을 안고 영화관을 찾았다.

예고편 외의 사전지식이 없이 만난 ‘기생충’은 예측불가의 전개 덕분에 2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을 체감하지 못하고 몇 차례의 폭소와 탄식을 터트리는 사이 순식간에 끝이 났다.

“광대가 없음에도 희극이, 악인이 없음에도 비극이 한데 마구 뒤엉켜 계단 아래로 곤두박질 친다”라는 봉 감독의 말 속에 영화 ‘기생충’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는 듯 하다.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이 기묘한 인연으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는 코미디와 공포, 스릴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영화가 시작되면 지하인 듯 지상인 듯 애매한 공간인 반지하 집에서 살고 있는 기택(송강호) 가족이 등장한다. 

집안에는 곱등이가 돌아다니고 매일 취객은 창문 앞에서 소변을 본다. 공짜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반지하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다 결국은 집에서 가장 높은 공간인 화장실의 변기 앞에서 와이파이 신호를 찾아내고 기뻐하는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의 에피소드에서 전원백수 기택 가족의 삶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대사들을 통해 짐작해보면 그들 역시 전형적인 소시민의 몰락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듯 하다.

처음에는 ‘데칼코마니’라는 제목을 생각했다는 봉 감독의 이야기처럼 두 가족은 가족구성원이 똑같다. 그렇지만 그들은 부모, 아들, 딸 가족 구성원이 같다는 것 외에는 별 공통점은 없다. 삶이 다른만큼 전혀 마주칠 일도 없을 가족들은 기우가 고액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네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묘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박 사장 집으로의 입성은 시작부터 편법이 동원되지만 기택네 가족도 처음부터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 받으며 공생하는 삶을 살고 싶었을 뿐.

 

 

영화 속 관람 포인트는 계단과 빛이다. 감독은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을 대비시키는 장치로 계단과 빛을 활용했다. 끊임없이 올라가야만 도달하는 박사장 집은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져 버려 더욱 암울한 세상을 상징적으로 그리는 듯하다. 그렇게 도달한 집안에도 계단의 이미지는 계속된다.

두 가족 중 누구도 악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지만 서로가 살아온 삶이 방식이 다른만큼 순간순간 미묘한 긴장의 순간이 위태롭게 감지된다. 그것은 넘어서는 안되는 어떤 선으로 표현되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냄새’라는 구체적인 단어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파국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단순한 가족 사기극으로 끝날수 있었던 영화가 반전을 거듭하게 된 것 역시 어쩌면 서로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 탓이 아닐까 싶다. 엔딩크레딧이 올리가고 두 가족이 함께 공생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으로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있을 때 들리는 노래 ‘소주 한잔’은 씁쓸한 여운을 더해준다.

봉 감독이 직접 작사하고 극중 기우(최우식)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곡이니 끝까지 자리를 지키도록 하자.

칸에서도 봉감독이 예고편에 나온 것 이상의 스포일러를 자제해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듯이 제대로 된 영화감상을 위해서는 최대한 내용을 모르고 백지상태에서 영화와 맞닥뜨리는 것을 권장한다.

보통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봉감독의 영화는 작품성과 재미까지 겸하고 있는데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꼬리표가 더해져 당분간 인기몰이가 예상된다. 게다가 영화가 끝난 뒤 숨겨진 비밀들을 알게 되면 다시 한번 그 의미를 곱씹어 보며 재관람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지도 모른다. 하나의 장르에 갇히지 않고 독자적인 장르를 개척해가는 봉 감독의 차기작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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