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의 우아한 클래식 선율로 시작하는 ‘스탈린이 죽었다!’는 최고 권력자의 죽음을 둘러싼 야합과 암투를 냉소 가득한 미장센으로 담아낸 블랙코미디이다. 숙청 명단에 사인한 스탈린과 실세들은 먹고 마시며 시시껄렁한 농담에 취해있고 어디선가 결행되는 체포와 처형이 교차편집으로 이어지던 그날 밤, 소비에트연방 심장부가 요동친다. ‘스탈린이 죽었다.’ (…)
스탈린이 죽었다니. 20세기 역사에 오점을 남긴 인물의 죽음 앞에 던져진 이 말은, 안타까움이 아닌 피의 숙청 종식을 고대해온 자가 내쉰 안도의 한숨이다. 그가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 섞인 탄식이다.
아내와 아버지의 배신을 지목하고 밀고해야 목숨 부지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인간백정’으로 불린 스탈린 시대가 그랬다. 스탈린의 잔혹성은 1937년에서 1938년 사이, 공산당에 의심을 품거나 권력에 장애가 되는 누구라도 강제수용소에 수감하고 처형한 ‘대숙청’으로 정점을 찍는다. 반대파를 제거하고 소수민족을 박해한 학살의 주역은 비밀경찰(NKVD)이었다. 기밀시효가 해제된 구 소련 문서에 따르면 대숙청 기간 동안 154만 명이 구속되었고 68만 명이 총살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2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농민에서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에 이르기까지 예외는 없었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시베리아수용소로 보내졌고 탈옥을 시도하다 발각돼 처형당한다. 최측근 몰로도프는 아내를 배신자로 고발했다. 이 시기 스탈린 권력을 지탱한 힘은 ‘공포’에서 나왔다.
공포정치가 무서운 건 거짓말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자기검열이 일상화되기 때문이다. 수백만을 학살하고 강제수용소로 보낸 대숙청의 기획자는 스탈린이었으나 그를 보좌해온 권력집단의 동조·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 민중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만든 제도는 설계자를 파멸로 이끈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렇게 시작되어야한다. 누가 스탈린을 죽였나? 혹은 스탈린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일까. ‘스탈린이 죽었다!’는 스탈린 죽음을 둘러싼 억측과 소문에 대한 영민한 대답이기도 하다. 스탈린을 죽인 건 독재자 자신이 고안한 ‘두려움의 시스템’이었다. 편집증과 비합리적 의심 강박으로 심복조차 믿지 못했던 성향이, 마지막 밤 침실 경호원도 철수시켰다. 우수한 유태인 의사를 박해하고 수용소로 보낸 탓에 의식 잃은 12시간 동안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며, 말년 무절제한 생활과 식습관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것. 참혹한 시대를 살아온 모두에게 절대 권력자의 죽음은 쾌재 부를만한 사건이었다. 죽음과 사투 중이던 스탈린의 병상을 둘러싼 조롱과 냉소의 기운은 스탈린이 죽을 수밖에 없는 시대의 우울과 공포를 증거 한다. 스탈린 사망으로부터 66년이 흘렀다. 비밀경찰 출신 푸틴이 4선에 성공하여 스탈린 이후 최장기 집권 중이다. 강한 러시아를 꿈꾸는 푸틴의 거침없는 행보가 세계의 근심으로 떠오른 시절. 꽤나 묵직한 이 영화에 전미비평가협회는 각본상으로 헌사 한다.
백정우(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