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뭣에 쓰는 물건인고
예단-뭣에 쓰는 물건인고
  • 승인 2019.06.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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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결혼정보 대표
교육학 박사
‘예단’은 결혼 풍습의 하나로 신랑 집에서 비단을 신부 집에 보내면, 신부가 시부모님을 공경하는 의미로 손수 비단 이불과 옷을 지어 시부모님에게 보내고 시부모님이 수고의 의미로 수공비를 신부 집으로 다시 보내는 풍습이다. 예단 문화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현금예단’이 생겨났고,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 고유의 풍습이라고 하지만 부담스럽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예전에는 반상기. 은수저. 침구를 현물 예단으로 보냈지만, 요즘은 시부모님이 원하는 취향에 따라 실용적인 선물을 하기도 한다.

사돈끼리 상견례시 예단과 혼수는 필요 없다고 사양을 하면서도 내심 안 해오면 서운해 하고 역정을 내는 시부모도 더러 있으니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 예단이다. 얼마 전에 결혼을 약속한 노처녀 노총각이 실제로 예단 때문에 파혼을 했다. 처녀 집에서 시부모가 예단은 필요 없다고 인사치레로 한 말을 그대로 믿고 예단을 생략한 것이다. 총각은 사십 평대의 큰 아파트를 장만했고 아파트 리모델링하는데 수천만 원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돈 많은 처갓집에서 내심 도와주길 기대했는데 신부 집에서 별 반응이 없어 섭섭했던 것이다. 신랑은 부모님이 불평을 하자, 술기운에 용기를 내어 시부모가 사양한다고 어떻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느냐고 속내를 비추었다. 이에 발끈한 신부가 친정 부모님에게 고자질했고, 일이 크게 벌어졌다. 딸의 부모님도 소위 말하는 잘난 사윗감을 보고 싶었지만, 딸의 나이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며 파혼을 통보했다.

나이 든 신랑신부들이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양쪽 부모님이 개입하면서 감정싸움으로 번져 결혼이 깨졌다. 결혼할 신랑신부가 사랑의 약속으로 주고받는 증표가 예물이다. 신랑신부도 예단과 예물의 크기가 사랑의 크기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작 혼수나 집 문제로 다투어서 부모님을 설득 못하고 결별을 한다면 사랑의 가치는 눈으로 안 봐도 뻔하다. 부모님의 재산으로 마련한 혼수나 예단인 값비싼 이불이 장롱 속에서 잠자고, 반상기와 은수저는 어느 구석에서 녹슬어 간다. 요즘 현명한 젊은이들은 양가 부모님과 잘 협의하여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분수에 맞는 집을 장만한다. 예단이나 살림살이도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여 실용적인 선택을 한다.

프랑스에 있는 친구 딸은 결혼할 때 엄마가 사용해오던 골동품 접시들을 다 가져갔다 한다. 프랑스 사돈이 엄청난 부자인데도 말이다. 사돈 집안 뜰에서 샴페인과 정성이 담긴 음식을 손수 장만하여 간단한 피로연으로 지인들이 신혼부부를 축하해준다. 우리처럼 화려한 예식장이나 값비싼 혼수 예단과 같은 겉치레는 없다. 검소하고 소박한 결혼식이다.

우리의 결혼문화도 이제 변화해야 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보살피고 힘들게 공부시켰는데 결혼비용까지 부모에게 의지하는 관례도 젊은이들의 과감한 의식 전환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어느 노학자의 저서에 ‘자식이 사춘기가 되면 30% 놓아주고, 성인이 되면 30% 놓아주고, 결혼을 하면 또 30% 놓아주고 나머지 10%의 관심으로 자식들과 교류하면 서로 탈 날 것이 없다.’ 깊은 통찰을 주는 대목이다. 자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임에는 틀림없지만 자식이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리더임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책임도 부모에게 있다.

요즘 ‘작은 결혼식’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양가 다 해서 100명이 넘지 않는 하객을 모셔놓고 고즈넉한 식당 등에서 외국에서 볼 수 있는 멋스러운 결혼을 실행하는 신랑신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다녀온 작은 결혼식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소박한 뜰에서 가랑비를 맞으며 양가 부모님들과 신랑 신부가 서로 덕담을 나누고 축하객들에게 환한 미소로 답례를 하는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식사도 조촐하게 하고 신랑신부가 손수 포장한 작은 선물로 답례 인사를 했다. 그날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표정으로 봐선 충분히 만족하고 감동받은 게 틀림없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아름다운 선택을 한 양가 부모님과 신랑 신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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