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조각가 김성수 '거칠어도 따뜻하다, 우리네 모습 보여서'
[서영옥이 만난 작가] 조각가 김성수 '거칠어도 따뜻하다, 우리네 모습 보여서'
  • 서영옥
  • 승인 2019.07.01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료 성질 유지하며 조각
입체미보다 회화성 강조
인간 표상 ‘꼭두인형’ 모티브
영웅 아닌 평범한 사람 관심
실존인물 400여명 작업 경험
11일부터 봉산문화회관 전시
김성수사람을만나다4-4
김성수 작 '사람을 만나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작업실로 간다. 그곳에는 파란 하늘과 늘 피어있는 꽃들이 있다. 그들은 늘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친구이다”(김성수의 작업일기). 도교에 심취한 북송의 곽희(郭熙)가 사생에 머물렀던 산수화를 이상화된 산수로 끌어올렸던 것처럼, 조각가 김성수도 자연과 벗하는 삶 속에서 무명의 나무에 새 의미를 부여하는 조각 작업을 한다.

위 일기에서와 같이 조각가 김성수는 현재(2019년) 시골 한적한 마을에서 작업한다. 목유정(木遊亭)으로 이사 온지는 15년 됐다. 11년간 머문 박곡의 폐교 작업실이 비좁아질 때 즈음이다. 성주군 선남면 도흥리에 자리한 목유정은 조각가 김성수의 작업실 별호(別號)이다. 지난 4월 목유정을 찾았을 때 봄기운이 생동했다. 담벼락 양지쪽에 줄지어선 유채꽃 곁으로 순풍이 지나갔다. 뜰에 넓게 퍼진 풀꽃들 사이로 흰 나비가 날고, 마당 한켠에 무리지은 작약은 동그란 꽃망울을 막 터뜨릴 태세다. 김성수가 작품을 하기 전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동화되는 자연의 벗들이지 싶다.

아래채는 작업 공간이다. 벽면 높은 곳에 걸린 현판 ‘목유정(木遊亭)’이 이 집의 용도와 의미를 함축한다. 위채에는 그간의 작업과정이 한 눈에 쏙 들어올 만큼 잘 정돈된 소품들이 즐비하다. 인기척이 나자 목유정을 노크하는 이웃이 는다. 그들이 들고 온 노란 참외에는 듬뿍 정이 담겼다. 주고받던 안부는 온기 그 자체다. 목유정은 농업이 주업(主業)인 마을주민들에게 이채로움과 삶의 환기를 동시에 제공하는 친근한 공간으로 자리 잡은 듯했다. 모두 조각가 김성수의 삶을 가까운 거리에서 증명하는 것들이다.
 

김성수-사람을 만나다3
김성수 작 '사람을 만나다'

김성수 조각 작품의 재료는 나무가 압도적이다. 작가는 나무를 주로 산비탈에서 구한다고 했다. 비탈진 응달에서 서식하는 나무는 직립 성장이 어렵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긴장은 필수고 햇볕 쪼이기는 덤이다. 김성수도 그랬다. 어릴 적 작가는 결핵성 관절염을 앓았었다. 수차례 수술에도 불구하고 평지의 나무들처럼 쭉쭉 벋어나갈 수 없는 삶에 봉착했다. 햇볕을 향해 간헐적으로 몸을 비틀어야 하는 것 외에도 산비탈의 나무와 심신이 아픈 작가의 처지는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김성수가 산비탈 음지에서 자라는 굴곡진 나무를 주시하게 된 계기이다. 형체가 뒤틀린 나무를 애써 정교하게 다듬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김성수에게 작업은 자기 발견이자 소통의 매개이다. 치유의 일환일수도 있다.

세부묘사를 생략한 그의 작품은 즉물적이다. 직관적으로 처리한 표면은 대체로 거칠다. 소박하고 담백한 형태에서는 꾸밈없는 부정형의 미학이 읽혀진다.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웃는 얼굴 수막새>와 같은 무덤덤한 아우라도 번져온다. 미학자 고유섭은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보고 ‘구수한 큰 맛과 무기교의 기교’가 느껴진다고 한바 있다. 김성수의 투박한 나무 조각에서도 유사한 미감이 감돈다. <웃는 얼굴 수막새>나 <백자 달항아리>에서와 같은 무심한 한국인의 정서가 김성수에게도 작동한 건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우리가 김성수의 작품에서 이 맛을 놓친다면 작품의 반만 감상하게 되는 셈이다. 동양화를 감상할 때와 같은 노력도 요구된다. 이를테면 사실적인 외형묘사에 치중한 형사(形寫)보다 내재된 정신 즉, 사의(寫意)에 집중할 때 감상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무심하게 툭툭 쳐낸 듯한 끌과 정 맛에도 작가의 성정은 깃들기 마련이다. 연장은 작가의 손맛과 정신을 두루 대변한다. 평범한 나무가 비범한 의미를 부여받고 작품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김성수는 고도의 테크닉을 뽐내지 않는다. 정확한 수치나 계산에도 의존하지 않는 그의 조각은 표현주의적인 성향이 짙다. 도나텔로가 광야를 떠돌던 <막달라 마리아>상을 조각할 때와 같이, 또는 로뎅이 <발자크>상을 제작할 때나 자코메티가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내면을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압축한 것과 같은 심상의 반영이 엿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이상화된 대리석조각에 견줄 수 없는 김성수의 조각은 직관에 더한 무심한 손맛에서 잉태된다. 공간 속의 형상이 이성으로 파악되는 것이라면 기운은 시간 속에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작위적이지 않은 김성수의 작품에서 감지되는 기운은 순수함이다. 이때 순수는 세상물정 모르는 아기와 같은 상태가 아니다. 지난한 삶의 질곡을 지나 비로소 체득한 맑은 영혼과 같은 상태라고 하면 어떨까. 바로 김성수의 조각 작품이 짓고 있는 표정이다.

김성수의 조각 작품에는 여백의 미가 흐른다. 여백은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허용하며 감상의 속도를 한 템포 늦춘다. 느슨한 조형의 밀도감은 위화감을 밀어낸다. 그것이 풍자가 아닌 해학을 끌어당긴다. 체화된 하심(下心)과 소요유(逍遙遊)의 태도는 고통마저 해학으로 풀어낸다. 모두 김성수의 작품을 정겹게 하는 요소들이다. 휴머니즘이 밑바탕이다. 곡진한 삶의 쟁투마저 따뜻한 서정으로 녹여낸 휴머니즘이야 말로 김성수의 조각 작품이 지닌 차별화가 아닐까 한다. 작업의 주요 모티브인 꼭두인형만 봐도 그렇다. 상여를 장식했던 꼭두는 인간을 대변하면서도 미완인 인간의 상위버전이다. 엄밀히 말하면 삶과 죽음의 경계 밖인 꼭두는 생사의 축소판이자 휴머니즘의 표상이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응집된 꼭두는 작가에게 환담과 청담의 촉매자로 기능한다. 현대의 불가사의한 문명과 냉혹한 인간성을 견제하며 인간성 상실의 이 시대를 해학적으로 비춘다. 우리가 놓치거나 잊고 있는 것들을 환기하게 하며 궁극에는 삶의 긍정적 언어로 자리매김한다.
 

김성수-사람을만나다2-2
김성수 작 '사람을 만나다'

김성수는 영남대학교에서 학사 · 석사과정을 모두 조각 전공으로 졸업했다. 졸업 이후 30여년 조각 작업이 꾸준하니 조각가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서 포착되는 것은 회화성이다. 미술에서 회화성이란 2차원의 평면을 일컫는다. 3차원의 공간감과 거리를 둔 회화성은 비 촉각적이며 정적이다. 김성수가 평평한 나무나 돌의 단면을 애써 입체적으로 변형하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노선변경이라기보다 유연성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 보존하고픈 존중의 태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그의 조각 작품의 거친 질감에 인상파 화가들의 빠른 붓 터치가 포개어진다. 사물의 본질을 탐구한 폴 세잔의 그림과 야수파 화가들의 파격적인 색채운용과도 마주친다. 고전주의 잣대로 보면 흠 잡을 데가 많은 조형이다. 분명한 것은 과녁을 적중한 작품에서의 흠은 흠이 아닌 필연성 내지는 독창성으로 간주된다.

김성수의 조각에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그는 현재를 응시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꼭두가 연결고리이다. 꼭두는 가고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가늠케 한다. 작가는 곁에 없음으로 오히려 오래 남는 역설 같은 기억을 꼭두로 조형한다. 작가에게 꼭두는 유년 시절의 상실과 위로의 매개체이다. 현재의 관계들을 헤아려보게 하는 성찰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지난 2018년 웃는얼굴아트센터에서 실존인물 군상 400여점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한 적이 있는 작가는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 인물군상은 가족과 친구,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전설 속의 영웅이 아닌 작가를 포함한 평범한 우리들이 주인공인 것이다. 김성수의 조각이 가상이 아닌 현실임을 방증하는 단서이다. 작가가 알고 있는 이들 개개인의 서사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 하여 김성수의 조각 작품은 표현주의를 포괄한 사실주의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천진한 아이의 시선으로 녹여낸 김성수의 조각 작품은 아포리즘(aphorism)과 같은 일기이다. 전문가와 일반대중이 고르게 그의 작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염려 하나는 작업 재료인 나무의 생명력이다. 방부처리에 따라 수명이 달라지겠지만 처음과 같은 느낌에 대한 기대는 감상자의 당연한 몫이다. 해결책이 작가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한다. 오는 7월 11일~ 8월 10일 <2019 헬로 컨템퍼러리 아트>(대구 봉산문화회관 1전시실)전을 앞둔 김성수의 표정이 밝다. 작가는 작업할 때 가장 행복하고 전시할 때는 활력이 두 배다. 대중과의 소통은 그 이상의 보람일 것이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